CEO 칼럼

발행년도 2006년 9월
제목 웰빙(Well-bing) 그리고 웰다잉(Well-dying)


경기도 이천에 가면「임종체험관」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평상시에는「죽음」을 생각하지 않지만, 일부러 죽음을 체험하게 되면 삶에 대한 새로운 의지가 생긴다하여 개인적으로 또는 직장에서 단체로 이곳을 찾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먼저「영정사진」을 찍게 되는데 호기심이 가득하던 얼굴표정이 점점 진지하게 변하게 되고,「유서작성」시간이 되면 무엇을 남겨야할지 당황스러운 모습을 띄게 됩니다. 아내·부모·자식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마지막 남길 말을 적다보니 만감이 교차하기도 하고 지나온 날들에 대한 후회·아쉬움이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다음에는 자신의 영정 사진을 안고 임종체험실로 들어가 자신이 누울 관 앞에서 유서를 낭독하게 됩니다. 유서가 낭독된 뒤 좁은 관속에 눕게 되면 관뚜껑이 덮이고 봉인하는 못소리가 울려퍼지고 관위에는 흙이 뿌려집니다. 10여분간의 정적이 흐르고 난 뒤 관이 열리고 죽음에 대한 체험이 모두 끝나고 나면, 사람들은 한결같이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새롭게 갖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 살고 싶어 하고 행복한 人生을 갈망하면서 살아갑니다. 이러한 현대인에게「웰빙」(Well-bing)이라는 단어는 가장 중요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입는 웰빙」에는 패션과 명품이 등장하게 되고,「먹거리 웰빙」에는 자연식, 건강식과 함께 식도락이 유행하게 되고,「주거 웰빙」은 집 안팎을 가꾸고 꾸미는데 많은 노력들을 기울입니다.「웰빙」이라는 사전적 의미는 육체적·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형태 또는 문화를 총괄적으로 일컫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산업고도화는 우리들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었지만 정신적 안정과 여유는 오히려 빼앗아 갔습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질병이 없는 건강한 상태뿐만 아니라 적장에서 느끼는 소속감·안정감·성취감 여가생활이나 가족간의 유대, 심리적 안정 등 다양한 요소들을 행복의 주요 척도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몸과 마음, 일과 휴식, 가정과 사회, 자신과 공동체 등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며 육고기 대신 생선과 유기농산물을 즐겨먹고, 단전호흡·요가·산행 등 마음도 함께 안정시킬 수 있는 운동 을 하고, 패스트푸드보다는 슬로우푸드를, 여행·독서 등 취미생활을 즐기는「웰빙족」들이 대거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웰빙이 “잘먹고 건강하게 잘 사는 것”이라면 웰다잉은 “잘 죽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에서는 “웰빙시대에 왜 웰다잉을 말하는가?”라는 주제로「웰다잉 체험교실」의 열기가 여름밤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매주 화요일 주·야간반으로 나누어 진행되는「죽음공부」는 불교신자뿐 아니라 카톨릭·개신교신자들의 참여도 높아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지대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죽음과 삶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죽음 준비는 삶의 시간이 제한되어 있음에 유념하면서, 지금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을 돌아보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더 의미있는 삶을 영위하자는 것입니다. 우리사회에 불행한 모습으로 죽는 사람이 많은 것은 죽음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평소에 죽음을 미리 준비해 갑자기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평안히 맞을 수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라는 한림대「오진탁」교수의 강의는 우리 가슴에 배여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자연에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고 인간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주와 자연의 관점에서는 生과 死는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고 바로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즉, 웰빙과 웰다잉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것입니다. 한편 우리사회는 “쇠똥구리로 살아도 이승이 낫다.”말처럼 人生을 찬미하고 즐기는 데는 익숙하지만 죽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철학은 zero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종교가 부활과 왕생(윤회)를 강조하고 있고, 역설적으로 죽음을 죽음이라 하지 않고 삶의 연장으로 인식되어 인간을 위로하고 달래고 절망의 한계상황에서 구해주는 것이 종교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종교백화점 같은 우리나라에서 죽음에 대한 이해와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삶도 제대로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느냐?”라는 공자님의 말처럼 죽음을 탐구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부질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죽음을 준비하려는 삶”으로 남은 인생을 더 보람있게 보낼 수 있을 것이고, 노령화·난치병 등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어진 현대인들에게는 죽음에 이르는 여생의 설계가 보다 지혜로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죽음이 우리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 어떻게 준비하는 것이 “아름다운 죽음”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그것은 죽음을 애써 기피하지 않고 이를 바르게 인식하면서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소망을 간직하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詩人「천상병」씨는 귀천(歸天)이라는 詩에서 이승에서의 삶을 “아름다운 소풍”이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죽음이라는 삶의 마지막 여정에서 바등바등 매달리지 않고 마치 즐거운 나들이를 왔다가 홀연히 돌아가는 홀가분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정리하고, 나누고 베풀면서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을 다져봅니다.

     

얼마 전 가까운 친구의 병문안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심한 당뇨로 혈액투석을 하고 있었고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졌으니, 생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였으나 운좋게 목숨만은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말은 할 수 없었고 겨우 친구라는 정도만 느끼는 정도였고, 이를 지켜보는 아내의 무표정은 함께 갔던 친구 모두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나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까하는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암투병에 대한 형제들의 죽음, 그리고 갑작스러운 어머님의 임종을 지켜봤고, 나 자신도 병원신세를 겪은 터라 결코 남의 일, 먼훗날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양로원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고 고통스러운 투병생활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겠지만 호스피스의 도움과 함께 품위있게(?) 최후를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웰다잉(Well-dying)이 중산층의 화두로 대두되면서 강남권의 사모님들 사이에 큰 화케가 되고 있는 유행어가 있습니다. 주제는 “9988-234”이고 이를 풀어가는 해법은“1, 10, 100, 1000, 10000”이라는 것입니다.

“99세까지 팔팔(88)하게 살다가 이삼(2,3)일만에 죽고(4,死)싶다.”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하루에 한가지(1)좋은 일을 행하고 열 번(10) 웃고 글 백자(100)를 쓰고, 글 천자(1000)를 읽고 만보(10,000)를 걷는다"를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생을 베풀면 스스로 행복해지고 웃으면 엔돌핀으로 자신이 젊어지고 주위사람을 편하게 해줍니다. 글 쓰고 책 읽으면 머리회전이 잘 되어 늙어도 치매에 걸릴 염려가 없고 무리한 운동보다 하루 1~2시간의 산책하는 습관만 갖게 되면 건강한 노후를 보장받게 된다는 뜻일 것입니다. 백화점에서 사는 값비싼 화장품이나 옷가지 대신 친구들에게 밥 한그릇 사주고 불우한 이웃에게 작은 것이나마 베푸는 마음을 갖는다면 더 젊어지고, 더 밝아지고, 더 건강한 웰다잉을 준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득 톨스토리의 단편소설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의 줄거리가 생각납니다.

어느날 농부는 하루 동안 제발로 걸어서 돌아온 만큼의 땅을 100루블에 사기로 했다. 단 해가 지기 전에 출발지에 돌아오지 못하면 돈을 모두 잃게 된다는 조건이다. 농부는 죽을힘을 다하여, 달리고 또 달려 멀리 멀리 갔고 출발지에 돌아오는 순간 그 자리에 죽고 말았다. 놀부는 그 자리 6척의 구덩이 속에 묻혔고, “진짜 좋은 땅을 차지했습니다.”라는 팻말이 꽂혀져 있다.

결국 人生은  空手來 空手去일 수밖에 없고,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것을 확실히 느낄수 있다면 웰빙-웰다잉 시대에 잘 대처해 살아가는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대표이사 白 星 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