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발행년도 2004년 9월
제목 아들 상훈에게.....


“이제 대학 전공을 결정해야 하는데 상훈이 생각은 어떤가?”

“수학을 좋아하니 수학과로 진학하면 해요.”

“???”

“제가 좋아하고 잘 할수 있는 분야니까요....”

”너가 수학․과학에 흥미를 갖고 있다는 것은 아는데 하필이면 기초과학을...아무래도 경제적인 문제도 고려해야 하는데, 수학을 택하면 밥 굶을 수도 있는데...“

“어렵게 살아도 좋으니, 수학을 전공하면 좋겠어요.”


대학진학을 앞두고 진로 문제를 2hr가까이 논의하다가 결국 너가 원하는 것으로 결정하게되었지.

이렇게 해서 남들은 고개를 내젓는 「수학의 길」을 가기위하여 원하는 P공대에 진학하게 되었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 3년동안도 넌 「數學者의 꿈」을 접지 않고 미국 유학 준비를 끈덕지게 해내었지. 퇴근길에도, 남들은 놀러다니는 휴일에도 도서관으로 GRE․TOEFL등 보다 유리한 조건을 획득하기 위하여, 보다 좋은 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하여 「주경야독」을 실천하였고, 아빠가 지켜봐도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느끼게 하였단다. 아무리 기초과학의 학위 취득이 어렵다해도 넌 반드시 해낼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지. 왜냐구? 너가 좋아하는 분야이고, 남들이 갖지 못한 너만의 집념이 반드시 성공의 길로 인도할 것으로 믿어. 화장실에 가도 수학책, 여행을 함께 해도 넌 항상 수학책을 지니고 다녔고, 책을 읽는 너의 얼굴에는 재미있는 소설책을 보듯이 항상 웃음을 발견할수 있었지.


엄마는 가끔 “당신 때문에 아들 둘인데 판검사나 의사 하나 못만들고...”하는 불만(?)섞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겠지.

너희들이 자라면서 선택하지 아니 할 직업은 「남 벌주는 사람, 아픈사람을 하루종일 대해야 하는 직업」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는 아빠의 생각을 자주 들려주었고 또 너희들은 아빠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 같아. 학위를 받고 10년쯤 미국 생활하겠다는 너의 이야기에, “이제 아들 하나 미국에 빼앗기게 되었구나. 자주 못보게 되겠구나” 하는 섭섭함이 몇 달동안이나 아빠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단다.

     

이제 너를 떠나보내면서, 과연 아빠로써 “내가 아버지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지만 대답은 항상 “글세올시다”인 것 같애.

무거운 세상짐에 축처진 어깨하며 움추러진 모습은 보이지 않았는지? 폭풍우나 비바람에 맞서 싸우지 않는 비겁자의 모습은 아니었는지? 모르는 것이 많고 권위주의적인 기성세대의 한사람은 아니었는지? 직장생활, 기업경영의 어려움을 넉두리하며 술취한 모습은 아니었는지? 항상 친구같은 사이가 될려고 했지만 너에게는 멀리 느껴지지는 않았는지?

직장인으로도 성공적이지 못하였고, 기업경영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결코 존경받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었던 것 같구나.

정말 너에게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에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일이 하나 있지.

국민학교를 세 번이나 옮겨, 울산으로 전학갈 때는 “나는 이사 안갈래요”라면서 울며 반항하던 너의 얼굴을 항상 기억하고 있지. 친구가 소중하던 시기에 울산․청주․서울로 멀리 옮겨가서는 새로운 학교 생활 그리고 낯선 친구들을 사귀어야 하니 얼마나 힘들었겠니?

     

너가 자라면서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아빠는 많이 기억하고 있지.

너가 첫돌을 맞이하기 이틀전에 유럽출장을 가게 되었고, 돌잔치를 앞당겨 하게 되었지. 그때 넌 연필․실․돈 중에서 첫번째를 집었고, 그때의 예상대로 넌 학자의 길을 걷게 되는가봐. 반원초등학교(서울)에 입학해서는 수영선수로 키우겠다는 학교코치의 요청을 거절하느라고 혼이 났고, 그덕분에 테니스, 탁구, 볼링등 여러 가지 스포츠 모두 수준급에 이르게 되었고 최근에는 골프 입문도 하게 되었지. 대성초등학교(청주)에서는 MBC퀴즈왕으로 뽑혀 부상으로 우리 가족들은 스키 Tour를 가게 되었고 지훈이는 얼굴에 큰 상처를 입게되는 사고도 겪게 되었지. 지금도 그때의 퀴즈대회 Video를 보면 답을 찾느라고 눈을 두리번거리는 너의 모습에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단다.

     

너가 원하던 과학고에 입학하고는 우리 가족 함께 미국 여행을 떠났고 그때의 추억 때문에 상훈․지훈 모두 미국으로 가게 되었는지도 모르지. 과외한번없이 대학을 들어간것도, 별다른 비용없이 대학을 마치게 된 것도 그리고 직장 3년 생활에 월급 모두를 저축한 것도 아빠의 부담(?)을 덜어주게 된 것이지. 한국과학재단의 장학금 등으로 학비부담없는 석박사를 하게 되는 것,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을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도 흐트러지지 않고 올바른 길을 걸어왔던 것 모두 아빠로써는 대견스럽고 고맙다는 생각밖에 없구나.

어릴때 탈장수술, 고등학교때 목수술로 입원해 있었던 일 그리고 대학교때 오토바이 사고 일으켰던 일등은 있었지만, 아빠․엄마 걱정끼쳤던 일은 없었던 것 같구나.

너가 국민학교 6학년때 지었던 詩를 하나 기억하고 있지.


연필과 지우개는 둘도 없는 친구

연필이 잘못하면 지우개가 도와주지

연필과 지우개는 우리들의 다정한 벗

학교도 같이 가고 집에도 같이 오지

연필과 지우개는 정다운 친구

그리고 상훈이가 받은 많은 상장들을 모두 잘 기억하고 있지.

     

출국하기전 할아버지․할머니 산소 성묘 다녀온 것 정말 잘했단다. 상훈․지훈이 아들 둘 낳았다고 얼마나 좋아하셨고, 너희들을 얼마나 귀여워 했는지. 요즈음 일을 하다가도 가끔 할아버지․할머니 생각이 떠 오르고 꿈에도 나타나시지.

시골에서 10남매를 키우시고 모두를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대도시로 유학(?) 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으셨는지?

당신께서는 하고 싶은 일, 갖고 싶은 모든 걸 포기하시고 오로지 자식 키우는 일에만 전념하시고...

근검절약은 말할 것도 없고, 부지런하시고, 우리 형제들 학비 마련하시느라고 극장․예식장․백화점․당구장 수많은 사업을 개척하시고, 할아버지는 정말 대단하신 사업가셨지. 자식 사랑에도 어느 부모님도 따를 수 없을 정도였고, 심지어 아빠의 첫직장․첫출근에 함께 오셔서 “우리 자식 잘 부탁합니다. 부족한 것 많겠지만 잘 가르쳐 주십시오”하고 담당과장에게 청탁(?)까지 하실 정도로 할아버지의 자녀 애정은 매우 깊었지. 증조부모님에 대한 효도는 아빠가 도저히 흉내낼 수도 없고, 주위 모든 친척들을 돌보아주실 정도로 情이 남달리 깊으셨던 분이시지.


가끔 아빠는 어느새 할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깜짝 놀랄 때가 있고, 상훈이 역시 할아버지의 많은 장점들을 하나 둘 답습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슬그머니 웃음을 짓게 되지.

미국 유학떠나는 너희들을 아빠는 정말 부러워한단다. 학창시절에 감히 꿈도 꾸지 못했고, 직장다니면서 넓은 땅으로 더 공부하러 떠나겠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하였으니까.... 항상 이야기해왔던 「평생공부」「정직성」「진인사대천명」등을 잊지말고,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말처럼 너의 꿈을 활짝 펼치도록 아빠는 기도하겠다.

멀고 먼 미국땅에서, 너의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과 투쟁이 결코 쉬운 길은 아닐 거야.

“세계의 모든 가정에, 모든 책상위에 컴퓨터를”라는 빌게이츠의 Vision처럼 “인류를 달위에 서게하자”라는 존F케네디의 Vision처럼 “위대한 수학자”라는 너의 꿈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 믿어.

잘가거라 상훈아! 건강하고....

너가 탄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면 엄마는 끝없는 눈물을 흘리실거야. 장남이라고 마음 든든하게 생각하던 상훈이가 가고 없으니 가슴에 얼마나 큰 구멍이 남겠니. 아빠도 오늘은 눈물을 흘리고 싶고, 아마 오랫동안 멈출 수 없을 것 같구나.

너가 떠난 먼 하늘을 쳐다보면서......

 

2004. 8. 13

음성에서 아빠가


     
후기 : 가족간의 편지를 CEO칼럼에 싣기까지 많은 망설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부모 입장에서 아들을 멀리 보내는 아버지의 심정을 공감할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원고 제출이라는 결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중간 중간 자식자랑같은 냄새를 풍기게 된 점 사과드리며, 공항에서 전해준 편지 내용 그대로 옮기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양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