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발행년도 2003년 12월
제목 있으나 마나한 사람


어느 군부대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새로 부임한 군목이 교회 일에 앞장서 열심인 장군에게 다음과 같이 부탁하였습니다.

"장군님! 주일날 30분만 일찍 나와 사병들에게 교회주보를 좀 나누어주십시오. 이왕이면 정복을 입고 훈장도 달고 나오십시오." 이 장군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젊은 군목의 말대로 30분 일찍 나와, 교회에 출석하는 사병들에게 주보를 나누어주었습니다. 장군이 주일날 교회에 나와서 안내를 한다는 소문이 나자 여기저기서 군인들이 몰려들었고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군 교회는 번성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별과 같은 장군이 거드름을 피우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졸병들에게 경례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주위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함께 행복한 미소를 던져주었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없는 것도 가진 것처럼, 모르는 것도 아는 것처럼, 조금만 지위가 올라가도 우쭐대는 태도를 갖는 요즈음에 정말 듣기 좋은 미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世人고등학교라는 곳의 "교장수위선생님" 이야기도 정말 근사한 본보기인 것 같습니다. 이 학교는 학교와 가정에서 거의 포기한 학생들만 모아 만든 학교인데, 처음에는 욕설을 퍼부을 정도의 거친 학생들인데 학교생활 3년 동안 순화되고 다듬어져 졸업생의 90%가 대학에 진학할 만큼 기적이 만들어지는 학교입니다. 이 같은 기적을 만드는 여러 가지 요인들 중에 학교의 「수위선생님」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장으로 정년 퇴직한 분이 수위자리를 자청하여 오셨고 재직 중에 망나니 학생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데 앞장섰던 것입니다.


장군과 교장 수위선생님의 이야기는, 「겸손」은 비굴함․용기 없음․실력 없음이 아니고 용기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덕목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웃음 가득한 얼굴로 훈장과 별 계급장을 단 장군이 사병들에게 경례하며 주보를 나누어주는 모습, 그리고 학생들과 후배 선생님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수위선생님의 주름진 얼굴은 세상을 밝게 하고 자신과 주위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업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더라면 나 자신이 어떤 모습을 짓고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정년퇴직 후, 책방주인? 택시기사? 아파트 경비원을 하고 있을 나의 표 정이 「교장수위선생님」의 미소와 유사하였을 것이라는 상상을 가져 봅니다.


우리들은 사람을 분류해보면, 조직과 사회에 해가 되는 사람을 人災, 과거에만 집착하는 한물간 사람을 人濟, 자리만 지키는 人在, 시키는 대로 일을 하는 사람을 人材, 그리고 창의적이고 리더십이 있는 사람을 人財, 즉 없어서는 아니 되는 보배처럼 소중한 사람들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 있으나마나한 사람,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으로 나누어볼 수 있고 우리 모두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고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태어나 유년기 때는 부모와 주위사람들에게 예쁜 어린이가 되기 위하여 재롱을 떨었고, 학교생활에서는 일류대학․유명대학을 입학하여 몸값을 올리기 위해 공부하였고, 직장생활에서는 부서 내에서, 회사 내에서 꼭 필요하고 무슨 일이든지 해낼 수 있는 능력자, 실력자가 되기 위하여 밤늦게까지 뛰어다닌 것 같습니다. 창업을 하여 회사의 기반을 닦고, 투명경영․정도경영을 실천하면서 우리의 Vision인 백년기업 토대를 마련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치판에 벌어지고 있는 세대교체논쟁도 따지고 보면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사람들과 이제 나이도 들었고 후배들을 위하여 자리를 내어놓아야 한다는 사람들의 자리싸움에 불과한 것입니다. 재물․권력․명예에 대한 욕망이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자리에 목을 메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아름다운 퇴임, 꿈을 꾸는 취임"이라는 신문기사는 그동안 대형교회 목사들이 후임목사 선정과정에서 「세습과 편법」으로 말썽을 빚어왔던 것에 비하면, 오랜 준비과정을 거쳐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는 사랑의 교회라는 것에 교회승계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내용이었습니다.

조용기 목사 없는 순복음교회를 생각하기 어렵고, 곽선희 목사가 떠난 소망교회를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교회를 떠나 은퇴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자신들이 세워놓은 교회에 "없어서는 아니 되는 목사"로 남아 있으려하고, 심지어는 아들에게 담임목사 자리를 세습하려는 목회자를 볼 때는 그들이 이루어놓은 수많은 공적이 물거품으로 바뀌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금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L. C. C를 경영하면서, L. C. C의 2代 사장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키워져야 한다는 것을 계속 강조해 왔습니다. 또한 나 자신의 모든 노력은 후계자를 발탁하고 그들이 원칙중심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간부사원․임원․CEO를 육성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좋은 인재를 선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가진 잠재능력을 이끌어내고, L. C. C의 기업문화와 혁신 Mind로 무장된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사고는 경영자가 버려야할 첫 번째 일이라는 생각으로, 사장 없이도 더 잘되는 회사, 결재 없이도 업무처리가 가능한 자율의 분위기를 회사에 뿌리내려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는 나름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왔고, 지금도 기업에 보탬이 되는 사람, 가정과 교우관계에 있어서는 없어서 아니 되는 유익한 존재가 되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있으나마나한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에 보다 많은 시간이 주어져야 하며, 나 자신의 지식․경험 그리고 지혜를 후배들에게 물려주는데 보다 큰 노력이 기울여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사회, 우리기업들은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에 의하여 운영되고 발전해왔던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들에 의하여 힘들고 어려워지는 것 또한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정치․사회의 우리 지도자들의 모습이 그러하고, 우여곡절 끝에 기업을 일군 경영자들도 "나 아니면 아니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종국에는 함량미달인 2대 경영으로 이어져 어려움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경영자들의 최고 리더십은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단계를 뛰어넘어 "있으나마나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믿음이 조직구성원들에게 확산될 때만이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때는 크라이슬러의 아이아코카 회장을 성공한 기업가로 간주하였지만, 지금은 실패한 CEO의 대표적 인물로 보는 것도 회장으로 있을 때는 회사가 발전하였으나 그가 떠난 후에는 회사가 어려움에 봉착하였고 결국 「다임러 벤츠」에 합병되는 불운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즉 아이아코카는 혼자서만 실력발휘를 하였고 사람을, 후계자를 키우지 않았던 것이며,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되는데는 성공하였으나 보다 중요하고 어려운 "있으나마나한 사람"이 되는데는 실패하였던 것입니다.

얼마 전 "이것이 참 기부이다"라는 짧은 신문기사가 머리에 떠오릅니다.

「대전 유성구 구성동에 있는 KAIST에서 '정문술 빌딩' 준공식이 열렸다. 정문술 前.미래산업회장의 기부금 300억원의 일부로 세운 지상11층 지하1층(연 건평 2738평)규모의 건축물인데 정작 주인공인 정문술 회장은 참석치 않았다.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는데 행사에 참석할 경우 과도하게 치켜세우는 등의 불필요한 상황이 벌어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 불참사유였으며, 같은 이유로 작년 5월에 열린 기공식 때도 불참하였다.」

벤처기업의 대부, 정도․투명 경영을 실천하였고, 2대 CEO를 자식이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물려주고 전 재산을 사회에 되돌려주는 존경받아야 할 기업가의 참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열정을 바쳤던 미래산업과 우리 사회로부터 "있으나마나한 사람"으로 멀어져가고 있는 그분의 여음이 계속 머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노자의「도덕경」한 구절은 경영인이 담아두어야 할 뜻깊은 내용인 것 같습니다.  

"공을 세웠다고 내 것이라고 하지 않는다.

내 것이라 하지 않음으로 구태여 머물려하지 않는다."

    

공을 이루고 자기 직분을 다한 다음에는 조용히 그 자리에서 물러서는 것이 하늘의 길이요, 인간은 진퇴의 때를 알아야 하며 물러서야 할 때 물러서지 않는데서 많은 비극과 불행이 발생한다라는 가르침인것 같습니다. 아침 7:30분에 휴게실과 화장실을 청소하는 사원, 외부손님과 마주칠 때 반가운 인사를 던지는 여사원들, 그리고 행동과 습관이 바뀌어 가는 간부사원들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들인 것 같습니다. 인재를 길러내고, 후배의 길을 열어주는, 그리고 "언젠가는 있으나마나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은 나의 후반부 인생에 있어 도전해 볼만한 가장 값있는 과제라는 확신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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