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발행년도 2023년 8월
제목 이웃나라 中國과 日本, 그리고 먼 나라 美國

중국과 일본은 우리 대한민국의 이웃나라로서 경제적, 문화적으로 누가 더 많은 기여를 했고, 우리 민족을 더 힘들게 했던 원수국(?)이라면 어느쪽이 더 심각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일본은 36년을 식민지로 삼았지만, 중국은 우리나라(이씨조선)를 503년 속국으로 지배했으니 우리 민족을 훨씬 더 오랜 기간 훨씬 더 가혹하게 했다는 것이 객관적인 평가인 것 같습니다. 시진핑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라고 말해 우리를 분노케 했지만, 그들은 500년 이상을 지배해 왔고 조선은 무력 항쟁을 포기하고 스스로 중국 밑으로 들어가 황제의 승인을 받아야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매년 바쳐야 하는 공물에 백성들의 진은 다 빠졌고, 일본은 철도·도로·행정 체계등 많은 것들을 남겼지만 중국은 빼앗아 가기만 했습니다. 일본의 위안부보다 훨씬 많은 50만이라는 환황녀(還鄕女) 역시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의 뜻으로 병자호란이 남긴 엄청난 사회 문제였습니다.




1960년대 대학을 다닐 때, 캠퍼스 뒷산을 넘거나 금화 터널을 통과하여 독립문을 몇차례 둘러본 기억이 납니다. 그때도 그렇지만 최근까지도 독립문은 “일본으로 부터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것으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서울 서대문에 있는 독립관이나 독립문은 36년간 지배해오던 일본으로 부터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500년간 속국으로 있던 중국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897년 서재필 박사가 주축이 되어 건립된 것입니다. 1407년 태종은 중국을 숭모한다는 모화루(모화관)를 짓고 서대문에 홍살문을 세워 중국 사신들을 영접해 왔는데, “중국의 은혜를 영접한다„ 뜻으로 이름을 바꾼 영은문(迎恩門)을 헐어 독립문을 세웠던 것입니다. “독립문에 대한 오해„가 희극이 돼버린 사건은, 2018년 3.1절 기념식 행사였던 것 같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3.1절 기념식을 마치고 서대문 독립문 앞에서 “만세„를 불렀던 것은 좌파 정부의 그릇된 역사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를 중국으로부터 독립시킨 것은 청일 전쟁의 승자였던 일본이고, 일본으로부터 독립시켜준 것은 세계이차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미국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차대전을 끝으로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8.15만 광복절이 아니고, 청일 전쟁에서 패한 중국이 1895년 4월 17일 조인한 조약에서 “청국은 조선이 완전한 자주 독립국임을 인정한다„라고 함으로써 중국의 500년 지배에서 독립할 수 있었던「4.17」도 “또다른 광복절„이 될 수 있다는 코미디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 민주당 대표가 6월 8일 주한 중국대사 관저에서「싱하이밍」대사와 가진 만찬 회동은 참으로 볼썽사나운 사건이었습니다. 싱 대사는 이재명 대표를 앉혀 놓고, “일각에서 미국이 승리할 것이고, 중국이 패배할 것으로 미국에 배팅하고 있는 한국 정부는 분명 잘못된 것이고 나중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라는 협박성 발언을 이어 갔었습니다. 국장급에 불과한 중국대사는 정중하지 않은 자세로 준비된 연설문을 15분이나 계속했고, 직전 대선에서 집권당 후보로 나섰고 지금은 압도적 과반의석의 제 1야당 대표는 공손한 모습으로 한마디 반박없이 경청하고 있는 사진은 정말 딱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구 5000만이 넘는 나라 중 국민소득 3만달러가 넘은 세계 7대국의 한나라인 대한민국의 야당 대표가, 정부를 공격하는데 보탬이 된다면 우리 국격이 손상되면서 국장급 관리에게 훈계를 듣고 협박을 당해도 감수하겠다는 이재명 대표와 중국대사의 만남은 참으로 불쾌한 장면이었습니다.




야권을 장악한 운동권 좌파는 현대판 위정척사파이자 “양복입은 사대부„라 규정할 수 있을 만큼 “친중 사대의 DNA„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학을 부정하는 이념 위주 관념론, 자기만 옳다는 도덕적 우월주의, 사물을 선악으로 가르는 이분법, 생각이 다르면 적으로 모는 당파성, Global 세계에 눈감는 폐쇄성 등 이씨조선을 지배했던 “성리학 원리주의„의 정신세계를 오늘날 좌파세력이 이어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베이징에 간 문재인 대통령은 “혼밥„ 굴욕을 당하면서도 중국을「높은 산봉우리」로 치켜세웠고, 한국은 스스로「작은나라」로 낮추는 자기 비하까지 서슴지 않았던 것도 좋은 사례입니다. 그 말많은 운동권 좌파가 단 한번이라도 중국에 싫은 소리 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중국이 대만 침공을 위협해도, 홍콩 민주화 시위를 무력 진압해도, 소수 민족 인권을 유린해도, 심지어 시진핑의 “한국은 중국의 속국„발언이 전해져도 한마디 항의 없이 침묵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일본에 대해서는 약간의 꼬투리만 나와도 호통치며 “죽창가„ 운운하는 것은, 일본을 “변방 오랑캐„ 쯤으로 여기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사람은 누구나 타고난 삶의 조건을 운명이나 숙명이라 부르면서, 사주‧ 팔자(四柱 ‧八字)를 논하고 있습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나라에도 운명이나 숙명과 같은「팔자」가 있는데, 한국은 세계에서「팔자」가 가장 사나운 나라중 하나일 것입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중국과 같은 대륙세력에 끊임없이 시달림을 당했고, 일본 같은 해양 세력에 의한 피해도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중국과 김일성이 모의하여 일으킨 6.25 남침같은 큰 전쟁만 50여차례 겪었고, 작은 전쟁을 포함하면 1000여회나 된다는 것이 우리 역사의 현실이고 보니 나라를 통째로 들어 어딘가로 이사를 갔으면 하는 것이 우리 국민들의 심정일 것입니다. 육지로 바로 연결된 중국은 수천년간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고, 조선은 생존 전략으로 사실상 항거를 포기하고 중국 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에 따른 피해나 수모도 전쟁 못지않게 고통스러워, “처녀들을 바치라„“금‧은을 바치라„“사냥용 말과 매를 바치라„ 라는 등 조공 요구는 끝이 없었고, 자원이 부족한 나라가 완전 거들날 지경이 되어 백성들의 삶은 핍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청나라가 일본에 패했던 청일 전쟁 이전 14년이나 계속되었던 조선 굴욕의 역사를 우리들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20대 중국 애송이 위안스카이(원세계)는 청나라 총독으로 사실상 조선을 지배했고, 대신들을 때리고 조선왕 위에 군림하면서 온갖 만행에 치를 떨었습니다.




얼마전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 때, 구한 말 한국에 와 뼈를 묻은 미국 선교사들 - 언더우드·아펜젤러·스크랜턴 등의 고마움을 언급한 적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의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못살고, 가장 더럽고, 가장 희망 없는 나라에 와서 자신과 가족의 모든 것을 바쳐 희생하였고, 이들이 세운 학교와 병원은 우리나라의 커다란 뼈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중국과 2,000년 이상 관계를 맺어왔지만, 미국 선교사들과 같은 도움을 제공한 중국인은 단 한사람도 없었고, 그들의 억압과 행패만이 머리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와 불과 100여년 관계를 맺은 미국은 세계 변방의 이 나라에 말로 다할 수 없는 도움을 주었습니다. 함께 피 흘려 싸우고, 식량을 주고, 돈을 주고, 미국으로 불러 가르쳤고, 미국 세계 전략의 한 부분이기도 했겠지만 중국과는 본질적 차이가 있습니다. 중국에서 벗어나 미국을 만났다는 것은 “우리의 역사적 선택과 행운이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싱하이민 중국대사는 “한국이 중국에 베팅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다„라 협박했지만, 우리는 중국 공산당에 베팅하지 않고 “미국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베팅하여 정상적이고 대등한 우호관계를 맺어나갈 것입니다.



이웃나라이면서 거대시장을 가지고 있는 중국과는 “전략적 친중„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자유‧민주의 주류 진영이 아니라 독재·권위주의를 향하는 중국편에 서야 한다는 주장이나, 제국주의 팽창 욕구를 담은 “중국몽„에 동참하겠다는 좌파들의 전근대성은 시대를 거스르는 어리석음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다른 이웃나라인 일본은 년간 800만명 이상이 여행을 하고 있고, 호감도 역시 75%로 매우 높고, 쌀밥·생선·된장국 등 식생활이 거의 같아 언제든지 서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이웃사촌„입니다. 그들이 36년 동안 우리 땅에 건설해놓은 철도·도로·항만·전기 등 여러 분야의 사회 간접자본들은 경제 발전의 근간이 되었고, 강제로 추방되면서 남겨두고 간「귀속재산」과「한일 청구권에 의한 유무상 공여」는 한국 경제의 오늘날이 있게 하였습니다. 우리의 국력이 떨어져 힘없이 당하기만 했던 한일합방과 해방 이후로 우리의 시각을 돌린다면 좋은 이웃·친구가 될 수 있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안보 협력과 시장경제는 협력과 공생의 단계로 확대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 주요국 중 미국에 대한 호감도가 가장 높고,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나 미국 스포츠 등 문화적으로도 친미(親美)에 가깝고 미국과 중국의 선호도 비교에서도 60:10정도로 중국보다 훨씬 더 우호적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5만명이 넘는 미국 국민이 목숨을 잃었고 10만명 이상 다친 6.25전쟁은, 미국의 도움이 있었기에 우리나라가 살아남을 수 있었고, 경제적 성장도 가능했습니다. 반대로 중공군의 참전은 남북 분단을 고착화 시키고… 한국 전쟁이 끝나고 1953년 상호방위조약에 서명하면서 맺은 한미 동맹의 70년을 맞이하면서, 미국이 한국의 안보와 경제에 절대적 기여를 했고, “공산주의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준 고마운 나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고조와 미국·중국의 극단적 대립 속에서 한미동맹의 가치는 재평가 받고 있고, “먼나라 미국„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표이사 白 星 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