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발행년도 2022년 11월
제목 OB들의 귀환 / 한뫼회 30주년



<OB들의 귀환>

모두들 반가운 얼굴들이었습니다. 마치 오랜 옛 친구들을 만난 것처럼~~ 보고 싶었고 즐거운 만남이었습니다. 창업 25주년을 맞이하여 회사 초창기·중반기 때 회사를 위해 그들의 청춘을 불태웠던 전직 팀장들을 Garden Party에 초청하여 지난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공장 건설을 주도했던 원성연, 영업의 이진영, 자재의 이순배, 품질 관리의 이현오 그리고 서승덕·김기영·견병하·최병훈·박민혁....


저녁 6시에 회의실에 모여 회사 소개와 Dispenser Gargle 미국시장 개척의 동영상을 시청하고, 신설 공장인 5공장을 둘러보았습니다. Gargle 자동 Line들과 Lip Care 설비 확장 현장을 견학하면서 친정집 LCC 발전에 놀라운 표정들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회사 변화의 큰 흐름인 수출기업으로의 변신 - 겨우 US100만 수출에 그쳤던 실적이 US500만 US1000만을 거쳐 지난해 US2000만 수출을 달성하고 US3000만 달성을 목표로 전진하고 있는 “백년기업·수출기업 LCC”에 무한한 격려와 응원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또한「무차입 경영」으로 안정된 재무구조와 사택 제공 등의 복리후생 제도의 개선내용도 함께 소개한 바 있습니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오늘이 있기까지는 지난 시절의 땀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것은 상식의 이야기입니다. 중소기업의 수명이 10년이면 10%, 20년이면 1%, 30년이 지나면 0.1% - 1000개 중 1개 기업만이 살아남는 우리의 기업 현실에, 창립 25년이라는 것은 감히 기적(?)이라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내수 시장이 아닌 일본·미국·유럽으로의 해외 진출을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는 수출기업으로써 3,000~5,000만불을 향해 전진하고 있으니... LCC가 품질·가격 경쟁력을 갖추기까지 OB들의 헌신이 있었고, 건전하고 올바른 기업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인내심이 있었고, 표준과 전산에 의한 System경영이 갖추어지기까지 그들의 idea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학교 동창회·향우회·기업체 OB모임 등 삼삼오오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 Group을 만든 사적 친교 모임들이 무척 많습니다. 이 모임들의 공통된 특징은, 특별한 목적은 없지만 과거 인연의 끈으로 맺어진 작은 공동체이고, 함께 했던 옛날을 돌이켜 보면서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소중한 만남인 것입니다.「OB」는 Old Boy의 약자로 동문이나 졸업생을 상징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지만, 기업에서는 전 직장에서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의 모임을 일반적으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삼성·LG 등 대기업들은 부문별로 OB모임을 갖고 등산·Golf·테니스 등 운동·취미 등으로 연결되고 있지만, 중견·중소기업 출신들의 OB모임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전자의 경우 함께 한 근속 기간이 길어 희로애락의 사건들이 상대적으로 많지만, 후자의 경우 이직 등으로 재직 기간이 짧아 고생하고 즐거워했던 사건들이 드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편 대기업들이라고 해도 모두 OB모임이 있는 것은 아니고, 재직때 충돌과 협력의 한가운데서 끈끈한 정을 나누는 “좋은 기업문화”가 존재했던 기업이라야 가능한 것 같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LG생활건강의 OB모임인「유엔모임」이, 많은 회원들의 기부로 기금도 많이 축적되어 있고 식사·야유회·Golf 등 다양한 만남이 계속되고 있는 것도 따뜻한 기업문화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번 LCC OB모임이 첫 만남이긴 하지만, 재직때의 끈끈한 인연과 소중한 만남을 바탕으로 따뜻한 친교모임이 계속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가면서 상호간 경제적·신체적·정신적 유대감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좋은 방향으로 성장해나가는 건강한 공동체 모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참석했던 어느 OB member가 “사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LCC에서 배우고 경험했던 대로 우리 모두 현직에서 잘 뛰고 있습니다.”라는 말 한마디가 귓가에 남아 있습니다.



<한뫼회 30주년>



나이 50에 창업하여 공장 건설과 은행 차입으로 힘든 시절을 보냈고, 회사를 지탱하기 위한 매출과 손익 확보 그리고 계속되는 각종 사고로 “왜 사업을 시작해서 이 고생이지?”라는 후회의 마음이 계속 부딪쳐 왔었습니다. 이데로는 몸도 망가지고 회사도 지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 각종 Stress를 떨치고 Refresh한 정신을 만들 방법이 없을까 하고 주위를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마침 고등학교 동기생 몇명이 매주 일요일 북한산을 오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는, 일요일 아침 구기동으로 달려가 4시간 함께 등산을 한 것이 2001년 1월이었습니다. 백운대·인수봉·만경대의 삼각산을 바라보면서 비봉능선·보현봉의 사자능선을 매주 오르게 되니, 한주간 쌓였던 피로와 stress는 말끔히 날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푸른 소나무·이름 모르는 야생화와 대화를 나누고, 암벽을 밟고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면 피톤치드가 쏟아지고, 삶에 대한 강한 욕구가 되살아나고 있었습니다.



1992년 박정호·박종팔 두 친구가 일요일마다 북한산을 오르면서 동기생(동아고)들을 모집하여 만든 것이 “큰 산이라는 순수 우리말인”「한뫼회」의 시작이었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모여들었지만 매주 일요일 4시간 산행을 지속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과체중으로 인한 퇴행성 관절염 등으로 20여명의 친구들이 입회·탈퇴가 반복되어 이제 정예 대원(?) 4명만 남게 되었습니다. 30년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폭염과 혹한의 날씨가 오고 태풍이 몰아쳐 입산 금지가 내려져도 비상문(?)을 통해 산을 오르는 등산 매니아들입니다. 코타키나발루산 · 후지산 등 해외 유명산을 찾기도 하고, 매년 설악산 대청봉을 등산하면서 “북한산 90세까지”라는 우리들의 목표를 다짐하고 있습니다. 매주 일요일 만나 땀 흘리며 산행하고, 산을 오르면서 정치·사회·경제·문학을 이야기하고, 하산하여 시원한 맥주 한잔 나누는 우리 한뫼회 대원들은 어쩌면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가깝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노후를 함께 즐기고, 여행하기 위한 “거금의 기금”도 확보하였으니, 더욱 더 단단한 고리로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2022년 금년이 친구들과 함께 북한산을 오른지 3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얼마전 자축 Party(?)를 조촐하게 가지면서,「30년 발렌타인 위스키」한병을 터트렸습니다. 은은한 술향기와 함께 40년산·50년산 위스키를 계속 마실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젊을 때는 설악산 봉정암이나 중청휴게소에서 1박을 하면서 이틀간 소청·대청·천불동 계곡·공룡능선 등 다양한 코스를 즐겼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산속 잠자리가 불편하게 느껴져 당일코스를 선택하곤 했습니다. 서울에서 5시 출발하여 한계령을 시작으로 소청·중청·대청을 올라 오색 약수터로 내려오는 10시간 코스로 설악산 비경들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습니다. 대청봉에서 기념촬영을 하면서 “힘든 산행길이었지만 드디어 해냈다”는 만족감은 하늘 높이 솟아올랐고, 건강 관리를 꾸준히 해나간다면 앞으로 10~15년은 충분히 설악산 대청봉을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85세까지 대청봉....”이라는 우리들의 목표를 다짐하면서....



토요일은 wife와 청계산을, 일요일이면 한뫼회 친구들과 북한산을 오르고 있으니 일년이면 100회 등산을 하는 셈입니다. 주말 산행은 한주간 쌓였던 피로와 stress를 말끔히 씻어주고, 나무와 깊은 계곡에 빠져들면서 여유로움과 행복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또한 산행은 불로장생의 비결인 “튼튼한 다리”를 선물하고 있고, 산을 오르면 100살까지 무병장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줍니다. 기업 CEO는 몸이 건강하고 정신이 맑아야, 회사가 나아갈 방향과 전략에 대한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고 팀장과 사원들에 대한 리더십 발휘가 가능합니다. “설악산 85세, 북한산 90세”라는 산행 목표가 실행될 때, 비로소 “百年企業 · 輸出企業”이라는 우리들의 Vision도 함께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일까요?





대표이사 白 星 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