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발행년도 2022년 9월
제목 부모님 은혜



나이가 들어가면서 누구를 만나면 단연 첫번째 화두는 건강입니다. 친구·지인을 만나면, 때로는 거래선 사장들과의 만남에서도 건강 문제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요즈음 건강하십니까? 어떻게 건강 관리하십니까?” 등등입니다. 건강 문제는 자기 관리이고 운동 지속 여부가 크게 영향을 미치겠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한계가 있는 지병이 바로 고혈압·당뇨병이고 결국에는 건강 수명이 짧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유전자 전달 여부가 질병 발생을 결정하는 유전성 질환, 사고방식·생활 습관·주거 환경의 공유에 따른 가족력 질환인 골다공증·비만 그리고 위암·대장암·유방암 등도 건강 수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주신 “건강 DNA” 덕분에 평생 혈압으로 인한 고혈압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단것을 먹고 싶은 욕망을 조절할 필요가 없고 당뇨에 대한 합병증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건강 체질을 타고 난 것이 무엇보다도 아버지·어머니에게 감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중대 기저질환인 당뇨와 고혈압에 대한 걱정이 없으니, 건강에 대한 자기관리만 꾸준히 해나간다면 100세 인생도 가능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나 자신 결점과 부족한 점이 많긴 하지만, 대체로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다는 것으로 자평(?)하고 있습니다. 새벽부터 국선도 수련을 매일 수행하고 있고, 토·일요일 빠짐없이 산행을 하면서 건강에 대한 자기관리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사업 역시 150여명의 직원들에 대한 끝없는 책임감(?)으로 창업 이후 25년간 기업 경영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격·성품이 후천적일까 아니면 유전적일까 하는 것에는 학자들 간에 서로 다른 의견을 보이고 있지만, 대체로 유전적이고 자라온 환경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인성·성품의 형성이 선천적·유전적이긴 하지만, 후천적·환경적·학습적으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특히 부모·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유아기·아동기에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저 자신이 여기 오기까지의 가장 큰 부분이 “성실”이었다면, “성실 DNA”를 주셨던 부모님 은혜에 깊은 고마움을 갖게 됩니다.



부모님께서는 근검·절약과 저축이, 가난을 극복하고 윤택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주는「큰 지혜」를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단 한번도 낮잠 주무시는 것을 본 적 없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동분서주하시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생활 태도는 저희 형제들의 평생 길잡이가 되고 있습니다. 배를 채우기도 힘든 가난으로 학교나 서당에 가보지도 못하셨지만, 한글·한문을 스스로 익히셨고 일본어에도 능통하실 정도로 총명하고 지혜로웠던 분이셨습니다. “공부를 잘해야 훌륭한 사람이 되고 성공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자식들의 입시·입학 때는 부산·대구를 항상 데리고 다니면서 하숙집까지 손수 구해주셨습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LG에 입사했을 때, 회사에 함께 오셔서 담당과장에게 “부족한 자식이지만, 앞으로 많은 지도·가르침을 주십시오”라고 부탁하신 것은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자식 사랑의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살아 생전에 10남매 모두 대학을 졸업시켜야겠다는 아버님의 강한 의지는, “남들 놀 때 나도 따라 쉬면, 자식들이 고생한다”라는 말씀으로 항상 귓가에 맴돌고 있습니다. 1960년대에 대학 진학률이 지금의 85%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인 7%에 불과했는데, “대학원 졸업과 석사 취득” 역시 또다른 부모님의 은혜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은 사업 감각이 뛰어나시어, 필요시마다 업종 변경에 과감하셨던 것입니다. 첫번째는 과수원이었고 다음에는 백화점(시골에서는 그저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상점 수준)이었는데, “과수원은 가을 추수 때 밖에 돈이 들어오지 않아 너희들 교육비 감당할 수 없었고, 대신 수입이 계속되는 백화점을 해야 자식 공부를 시킬 수 있었단다”라는 말씀으로 농업에서 상업으로 전환 이유를 제게 설명하셨던 기억이 뚜렷합니다. 또한 60년도말 TV가 일반화되고 color TV까지 등장하니, “성천아! 이제 극장 사업도 어려워지겠구나, 극장을 개조하여 상가로 만들어야 되겠다”라는 말씀과 함께 극장사업을 중단하셨던 것은 사업에 대한 감각·예지 능력도 뛰어나셨던 것 같습니다. 24년의 직장 생활에서 중소제조업 창업이라는 과감한 결단과 25년 기업 경영을 지속할 수 있는 “Business감각” 역시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극장을 2곳 경영하셨는데, 하나는 아버님이 또다른 하나는 어머님이 주로 맡으셨습니다. 극장에는 입장·매표·간판·영화 상영에 많은 직원들이 필요했고, 매점 설치 운영 등 부수적인 일거리도 많아 4·6·8촌 등 친인척들을 고용하시어 그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셨습니다. 10남매와 조부모님의 대가족에 백화점·극장에서 일하고 있는 친척들의 식사 뒷바라지는, 매일 20~30명의 식솔들로 붐비곤 했었습니다. 또한 그들의 결혼과 사업 독립에 많은 지원을 해주시어 안정된 생활 정착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친인척에 대한 “베품의 삶”을 실천하셨던 것입니다.



부산의 명문 중·고등학교에 매번 낙방했고 또한 S대학 입학은 못했었지만, 학교 성적은 상당히 우수했다는 자평을 하고 싶습니다. 머리는 평범했지만, 꾸준한 예습·복습과 함께 학교생활에 충실했고, 성실하게 노력한 덕분에 상위권을 유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가족 내에서도 형제들 간의 경쟁이었고, 좋은 성적표를 가져가면 기뻐하시는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고백도 가능합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터로 나가셔야 했던 아버님·어머님은, 10남매라는 많은 자식들 자녀 사랑에 대한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전혀 없었지만, 학교 성적표에 대한 관심은 유달리 높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결론적으로 부모님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칭찬과 격려를 받고 때로는 용돈 Bonus까지 받을 수 있었던 “학교 성적표”는 형제들 간의 경쟁이었고, 사회 진출 후에도 나 스스로 “독립심과 경쟁력”을 갖추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자식을 낳아 길러 보아야 부모님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실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주신 “건강과 성실 DNA” 그리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부산·대구·서울로 유학시켜 대학까지 졸업시켜 주신 자식 사랑과 배움에 대한 집념은, 저와 우리 가족의 오늘이 있게 했던 것 같습니다. 인생 후반전의 막바지에 서있는 제가 하늘나라에 계신 부모님께 큰절을 올리면서, 부모님의 크나큰 은혜에 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코로나 확산으로 2여년동안 고향에 내려가지 못했는데, 년말에는 반드시 부모님 산소에 성묘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대표이사 白 星 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