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발행년도 2019년 9월
제목 배려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초고속 승진을 계속하던 주인공「위」는, 인간미도 없고 주위 동료나 후배들과 마찰을 일으키며, 배려의 마음은 조금도 갖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자기가 인사발령 받은 Project팀이 6개월의 시한부 선고를 받은 부서로, 6개월내에 목표의 성과를 얻지 못하면 해체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집안에서는 아내와는 사이가 틀어져 이혼 소송의 위기까지 겪게 됩니다. 그런 그가 우연히「인도자」라는 고문을 만나면서 “배려”를 깨닫게 되고, 이를 실천에 옮기면서 떠났던 아내와 잃었던 선후배를 되찾게 됩니다. “남을 위한 배려가 곧 나를 위한 배려이다” “베푼 만큼 돌아온다” 등 배려는 행복·즐거움·성공의 조건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스스로 반성하고 변해갑니다. 오래전 신문 소개로 구입하여 읽어 보았던「한상복」작가의 “배려”라는 책의 내용입니다.

 

배려(Care)는 “짝처럼(配)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생각함(慮)”으로 한자 풀이를 할 수 있고, “남을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쓰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크게 개인적 배려, 사회적 배려 그리고 국가 차원의 배려로 구분 지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 배려는 나와 남 일대일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다양한 것들이 있지만 대화의 방식·언어적 표현방법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아」다르고「어」다르듯이 같은 내용의 말을 전할 때도 상대가 싫어하는 말을 사용해서는 아니 됩니다. 직장 동료나 부하 사원, 친구들과의 만남, 그리고 가정에서 부부나 자녀들과도 배려의 표현·행동을 보여야 합니다. 서로간의 오해를 사전에 방지하고 의사소통의 오류를 줄여주고, 서로간의 긍정적 연대감을 강화시켜 줍니다. 물질적 보상처럼 바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이 쌓여서 자신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직장 생활에서도 가장 힘든 부분이 있다면 “회사에서의 인간관계”이고 상사와 동료와의 마찰·갈등이 첫번째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전지대 역시 인간관계 · “동료의식”이 될 수 있고, 상하·동료 간의 배려와 존중이 함께 한다면 많은 불만들을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별일 없이 평탄하고 순조로운 일만 계속된다면 동료의식의 중요성은 멀어지겠지만, 힘들고 고통이 따르는 일들이 계속되면 동료들의 배려와 공감은 큰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기쁜 일에 같이 기뻐해주고, 열 받는 일에는 자기 일처럼 같이 흥분해주고, 위로해 주면서 더불어 갈 수 있는 동료들의 배려만 있다면 즐겁고 행복한 직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국내 심리학자들은 대한민국의「고독 지수」가 상대적으로 매우 높아, 우울증 발현·자살 충동·악성 댓글 작성·혐오 범죄 유발의 위험성이 점점 증대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의 원인으로는 개인주의 심화·세대갈등·노후생활 불안·가치관 혼란·사회구조 변화로 분석되지만, 한마디로 우리 사회에서 “배려”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보다 정확한 것 같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일자리 부족·사회 관계망 서비스(SNS)중심의 비대면 접촉 사회가 고독지수 증가의 직접적 원인이 되고, “혼술·혼밥”으로 대변되는 개인주의는 상대에 대한 배려심 상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반려동물이 가족과 친구를 대신하고 사람 대신 로봇친구와 시간을 보내게 되니, SNS를 통한「가상 친구」는 많지만「진짜 친구」는 없다는 아이러니가 생기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4차 산업혁명으로 변화하는 사회가 “인간중심 사회”로 지속발전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사회적 배려”가 필수적이며, 이것이 미래의 재앙을 막아주고 인류의 미래를 밝게 해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해줍니다.

 

사회적 배려는 매너와 예절을 의미합니다. 불특정 다수에 대하여, 사회적 약자에 대하여, 공공질서를 지키는 것들로 사회적 연대감을 높여주고 신뢰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가족도·친구도 떠나고 이웃들도 사라져버린 늙고 병든 노인네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는 절실한 것 같습니다. 장애인들과 임산부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역시 우리 사회를 밝고 아름답게 만들어 줍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교통 법규를 지키며 양보·배려하는 운전 습관 역시 신뢰사회로 이어지게 합니다.

 

아파트 단지의 목욕탕을 이용할 때도 “실종된 배려”를 실감하게 됩니다. 수건 1~2개면 충분한데도 공용이라 4~5개를 사용하는 사람, 냉탕에서의 폭포 사용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 장난치고 고함지르는 아이들과 방치하는 아버지, 샤워를 마치고 샤워기를 잠그지 않는 사람, 때수건·마른 수건 사용하고 난 후 아무 곳이나 던져놓는 사람.... Golf Rounding후 목욕탕에서도 사회적 배려는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수건·샴푸·치약·비누 등 사용후 이곳저곳에 던져 놓는 사람, 탕 안에서 소리 지르거나 주위를 배려하지 않고 무용담을 펼치는 사람....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인데도 우리 수준이 유치원 정도 밖에 안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대조적으로 일본의 목욕탕을 이용하게 되면, 일본인의 질서의식·타인에 대한 배려를 실감하게 됩니다. 우리들과는 대조적으로, 수십명이 다녀가도 샴푸·수건·화장품이 그대로 본래의 위치에 놓여 있고, 조용하게 깨끗하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습니다.

 

교통사고율 세계 1위, 교통사고 사망자수 OECD 국가 중 최상위로 교통 후진국의 불명예를 우리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양보와 배려 없는 교통 문화는 “빨리 빨리” 문화와 상승효과를 드러내어, 시내 곳곳의 불법주정차, 교차로에서의 꼬리물기, 이차 저차에서 쏟아내는 크락숀 소리는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자동차 보유대수 2000만대를 훌쩍 넘어서고도, 남을 배려하거나 방어 운전은 고사하고 나만의 이기적인 운전습관으로 교통사고가 빈발하는 교통사고 왕국이 되어버렸습니다. 또한 시내 운전 중에 아직도 담배꽁초를 창밖으로 던지는 모습을 여기저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들 중 하나는 그들의 교통문화입니다. 40여년간 수백번 일본을 방문했지만 단 한번의 불법 주정차를 발견한 적이 없습니다. 혹시나 싶어 새벽에 호텔을 나서서 뒷길을 산책하면 그곳에도 표시된 곳에만 주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규정 속도를 준수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횡단보도 정지선을 철저히 지키면서 교통신호가 떨어지기 전에 출반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비교적 다혈질이라는 OSAKA 시내에서도 경적음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고, 무리하게 끼어들기 하는 차량이 없으니 차량의 흐름은 순탄하게 느껴집니다. 승용차·버스 등 모든 차량들, 특히 택시는 흙이 묻어 있는 경우는 상상할 수도 없고 내부는 쾌적할 정도로 깨끗하고 친절합니다.



동일본의 지진과 쓰나미의 대참사 앞에서 벌어지는「메이와쿠」의 “배려 문화”에 세계가 놀라고 있다는 언론 보도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호텔 측이「전기가 들어올 때까지 숙박객을 받을 수 없다」고 안내하자, 로비에 몰려있던 숙박 예약객 50여명은 조용히 줄을 서기 시작했고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지만 노약자들을 앞세웠고, 긴급용으로 우동 10그릇이 제공되었을때 다른 고객의 배고픔을 걱정하며 뒤로 뒤로 우동을 돌리는 “양보의 딜레이”가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수만명의 사상자 앞에서도 대피소에 집결한 주민들은 정부 등 누구 탓도 하지 않고 “빨리 복구가 되길 바랄 뿐”이라며 모자라는 물과 담요를 서로 양보하며 위로하는 감동적인 장면들이 TV를 통해 전해졌습니다. 가족을 잃고 재해를 당한 일본인들이 크게 흐느끼거나 울부짖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도 “내가 그런 행동을 하면 나보다 더큰 피해를 당한 이들에게 폐가 된다”는 극도의「배려 정신」때문이라는 것에 우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습니다. 만약 우리나라에 이런 대참사가 일어났다면.... 우리 국민들의 대처 방법이 상상되고 머리에 그려지면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대한민국이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지금의 실상은 관용과 배려가 OECD 국가 31개국 중 맨 꼴찌라는 것은 충격적으로 느껴집니다. 또한 우리의 국민 소득은 최상위권이지만 행복지수는 54위로 나타나고 있어, 돈도 잘 벌고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임에도 왜 이렇게 불행감을 느끼며 살아가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됩니다. 세계 성형 수술률 1위의「외모지상주의」, 결혼 배우자의 첫째 조건이 되는「물질주의」, 대학 진학률 세계 1위의「결과주의」, 교육에 의한「경쟁주의」가 우리들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우리들의 행복지수가 급격히 추락하는 것은 개인주의·이기주의가 우리 사회에 확산되는 것과 무관하지는 않습니다.「양보」「희생」「배려」라는 것이 일상생활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 - 어릴 때부터 가정·학교·사회로부터「배려와 관용」이라는 것은 전혀 교육되지도 강조되지도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모두와 사이좋게”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말자(메이와꾸)”라는 교육과 달리, 우리들은 “최고가 되어라” “남에게 무조건 이겨라”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일본인은 개인은 약하나 단체가 강하듯이 조직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뛰어난 것도, 배려의 마음이 성장과정에서 교육되고 훈련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가 정의로운·공정한 사회와는 거리가 멀어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다른 사람이 배려하기를 기대하고 있고, 기다리고 양보하면 손해를 본다는 생각에 젖어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행복은 작은 배려에서 비롯되며, 이는 사소한 관심에서 출발하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다보면 “배려의 싹”이 솟아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나눔과 배려의 정신 함양은 학교교육에서 길러져야 하고, 보다 근원적인 가정교육에서 시작되어야 행복한 가정을 가꿀 수 있고 화목하고 신뢰받는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배려가 없는 우리 사회 -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이 단절되고 있다는 것에 우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대표이사 白 星 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