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발행년도 2019년 2월
제목 행복과 불행



2000년 12월 5일 “세기의 결혼식”의 주인공은 톱스타 최진실과 조성민이었습니다. 최정상 가도를 달리는 연예인과 일본 요미우리의 초고액 연봉 야구선수의 결혼식은 최초로 인터넷 생중계되었고, 무려 50만명이 접속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행복을 모두 가졌던 것처럼 느껴지던 그들의 결혼이 2년만에 별거 그리고 이혼, 최진실과 조성민의 자살로 행복이 아닌「불행의 Story」로 막을 내렸습니다. 행복이 정신적·육체적으로 욕구를 만족시켜 부족함이 없는 심신이 안정된 상태라 하지만, “넘쳐도 넘쳐도 더 갖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채울 방법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행복의 문으로 들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아흔 아홉 가진 자가 한개 가진 자의 것을 탐낸다고....”, 행복은 아주 작은 곳에 있고 가까운 곳에 있는데, 너무 거창하고 큰 것을 너무 멀리 찾다 보니.... 어쩌면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앞뒤처럼 항상 붙어 다니니, 이것을 행복이라면 행복이고 저것을 불행이라면 불행이 되는 것이 아닌가요?

   

먼옛날 “운명”이라는 이름의 부인이 집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와 함께「불행의 여신」이 “얼마 동안 네 집에 머물러야겠다.”라면서 들이닥칩니다. 집안은 어두워지고 웃음이 사라져 불행의 그림자가 닥쳤고, 제발 집에서 떠나달라는 요구에도 “원하든, 원치 않든 나는 누구의 집에나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라고 집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불행의 여신」이 “이제 작별해야 할 때가 왔다.”라면서 집을 떠났고, 며칠후 밝고 웃음 띤「행복의 여신」이 문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녀는 “얼마 동안 네 집에 머물러야겠다. 불행의 여신이 다녀간 다음에는 반드시 내가 찾아오게 되어있다.”라고 말하면서 집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날부터 집안에는 행복과 평화·기쁨이 계속되었지만, “오래오래 머물러 있어 달라”는 간청에도 「행복의 여신」은 “나는 한집에 오래 머무를 수 없는 몸이다. 다른 집에 또 가봐야 하니까...”라면서 그 집을 떠나갔습니다. “인생만사는 새옹지마”라서 세상에는 행복만 있는 인생도 없고, 불행만 계속되는 인생도 없습니다. 낮이 지나면 밤이 오고, 밤이 지나가면 낮이 오듯이 행복과 불행의 교차는 우리 인생의 기본 법칙이고 생활의 리듬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Happiness & unhappiness is always coexist"라는 영어 표현처럼 행복과 불행은 항상 공존하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저울에 행복을 달면

불행과 행복이 반반이면 저울이

움직이지 않지만



불행 49% 행복 51%면

저울이 행복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행복의 조건에는 이처럼 많은 것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 삶에서 단 1%만 더 가지면 행복한 겁니다.

-------------------------------------------------------------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되어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자락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앞의 시 한귀절은 이해인 수녀님의 “행복”이고, 뒤의 시는 “믿음의 힘”이라는 詩입니다. 우리들이 바라는 행복은 마음에서 비롯되고, 긍정적 사고를 가질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슬플 때 세상이 우울하게 보이고, 내가 벅찬 기쁨을 가질 때 세상도 덩달아 흥청거리고, 내가 행복할 때 세상은 더욱 밝고 웃음이 넘치게 됩니다. 

 

“모든 길은 행복과 불행 사이로 나 있었다. 나는 그길로 가고 있다.” 황금찬 시인의「행복과 불행사이」라는 시의 한귀절입니다. 어떤 때는 행복으로 기울다가도 불행으로 기울기도 하는 흔들의자에 앉아서, 돗수 높은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면 편안하고 밝아진다고 합니다. 삶은 행복과 불행을 오고 가는「흔들의자」이고, 불행을 당하지 않으려고 가만히 있으면 결코 행복은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행복과 불행의 크기도 근본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작은 것도 커지고, 큰 것도 작아질 수 있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큰 불행도 작게 처리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조그마한 불행도 확대해서 스스로 큰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얻은 깨달음이 있다면, 행복과 불행은 항상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마냥 행복할 것 같았던 삶도, 어느 한순간 연극의 막이 바뀌듯 세상에서 오직 나 혼자만 나락에 떨어진 것 같은 불행의 시간이 다가 옵니다. 그래서 편안하고 행복한 지금 그 행복을 만끽하지 못하고, 언젠가 다가올 불행이라는 불청객을 두려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어리석은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불행 바로 뒤 또 다른 행복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고 다음번 행복이 찾아올 것을 확신한다면 지금 겪는 불행은 얼마든지 견디고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우리들이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같은 일을 두고도 나쁜 것·싫은 것의 불행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좋은 점·득이 되는 것·감사의 행복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옛날 공자가 조카「공멸」에게 “벼슬을 해서 얻은 것이 무엇이고 잃은 것이 무엇이냐”라고 묻습니다. 공멸은 “얻은 것 없고, 잃은 것만 세가지 있습니다. 일이 많아서 공부를 하지 못했고, 녹봉이 적어서 친척을 돌볼 수 없었고, 공무가 다급해 친구들과 소원해졌습니다.”라고 답합니다. 공자는 같은 벼슬을 한「복자천」에게도 질문을 했고, 그는 “저는 잃은 것은 없고 세가지를 얻었습니다. 예전에 배운 것들을 날마다 실천해 학문이 늘었고, 녹봉은 적었지만 이를 아껴 친척을 도왔기에 더욱 친근해졌으며, 공무가 바빴지만 틈을 내니 친구들과 더욱 가까워졌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렇게 행복과 불행은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라는....

 

유엔이 발표한「세계 행복 지수」에서 한국은 155개국 중 55위(2017년)였고, 2015년 47위에서 더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인의 행복지수를 떨어뜨리는 요인 중 삶의 자기 결정권을 뜻하는「생애 선택 자유」가 127위로 매우 낮은 것이 특이한 부분이였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생 중 81%가 “고등학교를 사활을 건 전쟁터”라고 생각하고 있고, 같은 생각을 가진 미국(40.4%)·중국(41.8%)·일본(13.8%) 학생들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생활을 “좋은 대학을 목표로” 높은 점수와 등수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고 있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고, “친구들과 함께 하는 광장”이라 응답한 사람은 12.8%인데 일본은 이 수치가 75.7%로 훨씬 높게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10대를 왜 전쟁터(?)에서 보내야 하고, “좋은 대학에 갈수록 더 행복해진다”는 미신(迷信)에서 벗어나지 못할까요? “대학을 가지 않거나 전문대를 갈 수도 있다”는「생애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은 “강도 높은 행복에 대한 집착” 때문이라는 해석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다.(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라는 정의를 받아들인다면, 쓸데없는 패배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연세대 서은국 교수는「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becoming(~이 되는 것)과 being(~으로 사는 것)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 재벌집 며느리가 되는 것(becoming)과 그 집안 며느리로 하루하루를 사는 것(being)은 아주 다른 이야기이다. 고교생은 오직 좋은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대학생은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중년은 노후 준비와 자식의 성공을 위해 전력 질주하고 있다. 이렇게 becoming에 눈을 두고 살지만, 정작 행복이 있는 곳은 being이다.” 설령 고등학교라는 전쟁터에서「명문대 합격」이라는 승리를 갖는다 해도, 한번의 강도 높은 행복을 느낄 뿐 평생의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않습니다.「로또복권 당첨자중 불행해지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한번 성공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날 때 우리가 바라는 행복도 가까이 다가올 것입니다. 

 

회사는 “사원들이 행복하고 꿈을 실현하는 LCC”를 목표로 설정하고, 우리의 헌법인「회사사명서」도 이에 따라 개정하고 직원들이 만족하고 행복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이 무엇인지를 찾고 있습니다. “Stress가 없는 회사” “사원들이 원하는 각종 복리후생제도” “급여가 충분한 회사” “상하 좌우 소통이 원활한 조직”등등 사원들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회사를 원하고 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고 그러한 이상적 회사는 우리들의 결연한 의지와 노력 없이는 얻어질 수가 없습니다. 국내외의 치열한 경쟁 속에 자칫 방심하면「몰락의 길」에 빠져들고, OEM·ODM 제조의 중소기업으로 대기업·Global 회사와 종속적 관계로, 자사 Brand 중심의 경영전략을 펼칠 수 없다는 숙명적(?)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OOO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대기업이 아니라, 사원들은 (충성심은 아니라도) 작은 애정도 갖지 않고 있고 조금 마음이 바뀌면 쉽게 떠나버리는 현실에서, “직원들이 행복한 회사”는 너무나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큰 배는 아니지만 “작은 모터 보트”처럼 빠르고 쉽게 변화·혁신하면서 파도를 이겨낼 수 있다면, 작지만 경쟁력 있는 강소기업을 만들 수 있고 함께 항해해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LCC의 최고경영자인 내가 “사원들을 행복하게”하고 그들이 바라는 “꿈을 실현하게”해줄 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 질문을 던져 봅니다. 내 자식들의 행복과 그들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다는 결론처럼, 아니라는 결론에 쉽게 도달할 수 있어 훨씬 가벼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회사는 주택 제공·기숙사·내일채움공제 도입·맛있는 식사·독서문화 등의 복리후생제도를 개선하고, 포상제도·해외출장 기회 확대 · 7H교육 · 영어·일본어 자기개발과 동기부여 등 즐겁고 보람찬 회사 생활이 되는 “환경과 여건”을 만드는 것이 최우선 과제인 것입니다. “직원이 행복해야 사장도 행복할 수 있고, 그래야 회사도 성장하고 사회도 발전한다.”는 평범한 진리 속에, 작은 것부터 그리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행복 회사”를 향해 한계단 한계단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휴가를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것, 책을 보면서 공부할 수 있는 기업문화가 첫걸음일 수 있을 것입니다.




대표이사 白 星 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