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발행년도 2014년 9월
제목 이순신의 리더십


「이순신의 명량대첩」을 그려낸 영화 「명량」이 주말을 넘기면서 개봉 12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신문보도는 우리 가족들을 영화관으로 이끌었습니다. 관객 천만명의 기록은 가장 짧은 기간의 국내영화 「괴물」보다 9일 빠르고, 가장 많은 관객을 모았던 「아바타」보다 무려 26일이나 앞서고 있다니 「명량」의 흥행인기가 얼마나 높은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관객 1,000만명” 기록의 영화는 9편이 있었다고 하니, 이제 명량이 10번째 「1,000만 클럽」에 가입하게 되는 것이고, 한국 영화로서는 경이적인 기록이 될 “1,000억 매출”도 무난히 달성할 것 같습니다.



항일의 상징에서 국가의 영웅으로, 고뇌하는 남자와 忠의 대명사로, “백성의 마음을 아는 리더”로 연극․영화․드라마․소설 등 다양한 형태로 충무공 이순신은 우리들에게 다가왔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광복 후에는 항일과 극일의 상징으로, 경제 개발 시대에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카리스마적 영웅으로, 연극무대와 영화에서 “성웅 이순신”을 열광하고 환호하였던 것입니다.

그 후에도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서 내면적 고뇌와 함께 강인함을 갖춘 “진짜 남자”로 재조명 되었고, 2005년 TV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은 시청율 33%라는 기록으로 폭팔적 인기를 누려, KBS는 재방영의 결정을 내리기도 하였습니다.

영화는 이순신이 고문을 받고 투옥되었다가 다시 「삼도 수군 통제사」로 임명되어, 「칠천량 해전」의 대패로 겨우 12척의 남은 배로 명량 해전을 준비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장수와 병졸들은 300여척의 일본을 이길 수 없다하며 육군과 합류하자는 반론이 일어나고, 탈영병은 줄을 잇고, 장군을 암살하려는 자객이 나타나고, 마지막 남은 거북선도 반대파에 의하여 불타게 됩니다. 명량해전 전날 이순신은 막사를 모두 불태우고, 자신을 믿고 따라오라고 명령합니다. 장군은 “독버섯처럼 퍼진 두려움이 문제지, 만일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백배, 천배 큰 용기로 배가되어 나타날 것이다” 라고 고뇌하면서 두려움을 이겨내게 합니다. 왜선 300척에 맞선 우리 수군들은 두려움에 빠져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자 이순신이 탄 대장선은 홀로 진격하고, 산위에서 피난가던 민초들은 목선을 타고 응원을 하며 우리 수군들에게 이길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복돋아 줍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정치 지도자들이 “명량”관람에 줄을 잇고 있지만, 꼬여져 있는 정국을 풀지 못하고 있는 위정자들의 불편한 심기를 엿보는 것 같아 국민들 모두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12척의 배로 300여척의 왜적을 무찌르는 통쾌함도 그렇지만 이순신 장군이 보여주는 “리더십”에 국민들은 열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말보다 행동으로 실천하는 리더십, 탈영병의 목을 베는 엄중한 군율의 리더십, 시골 노인의 말에도 귀 기울이는 소통의 리더십,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인을 버리고 나라를 구하는데 온몸을 바치는 “憂國衷情”의 리더십을 이순신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윤일병 구타 사망,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어려운 경제 난국 속에서도 무능과 무책임의 극치를 보이고 있는 정치권 지도자들은 명량에서 보여주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이순신의 리더십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19대 후반기 국회가 가동되었지만 석달동안 단 한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했고, 정부가 요구하는 경제 활성화 법안들은 논의조차 못하고 있고, 「세월호 특별법」처리도 야당의 뒤집기로 합의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영화에서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忠)을 쫓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7.30 재보선에서 확인된 민심은 “민생정치” 였는데 정치권은 또 다시 국민을 위한 정치를 망각하고 당리당략에 몰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명량의 관객이 1,500만명을 넘어 2,000만명을 돌파 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영화계의 대형급 대풍으로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언론 시사회 직후 기자들의 평가도 썩 좋지 않았고, “작품성”에도 많은 아쉬움을 남긴 「명량」이 이처럼 국민들이 열광하여 일종의 “사회현상”으로 번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상영 전반부는 명량해전을 앞두고 고뇌하는 이순신을, 후반부는 해상 전투를 다루는 단순한 스토리의 영화인데도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세월호 참사 이후 정치 지도자들의 무기력과 어려워지는 경제 난국에 실망한 국민들이 이순신이 보여주는 리더십에 열광하며, 이 난세를 해쳐나갈 수 있는 “영웅과 그의 리더십”에 대한 기대와 갈증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정신으로 거대한 왜적에 맞섰던 담대함과 용기에 대한 경의일 수도 있고, 왕은 자신을 역적으로 몰아도 군신의 의리를 다해야 하는 인간으로서의 고뇌에 함께 슬퍼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조선의 수군을 폐하고 남은 병사를 움직여 권율 장군의 휘하에서 육전에 참가하라는 임금의 교지를 받고는, “전하!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신이 있는 한 왜적이 우리를 업신여기지는 못할 것입니다” 상소를 올려 명량 해전을 준비하게 됩니다.

울돌목에서 진을 펼치고 있던 조선 수군은 왜적 대군이 몰려오자 패닉상태에 빠져 「대장선」만 남겨놓고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는 후방으로 도망갑니다.

부하들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지 못하면, 전쟁의 패배는 물론이고 조선의 운명도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이순신 장군은 솔선수범의 결연한 자세로 홀로 사투를 벌이게 됩니다. 금방 침몰할 것 같았던 이순신의 대장선이 수많은 왜선들을 쳐부수다가 위기에 빠지는 순간, 부하들의 두려움이 용기로 바뀌고 자만심에 가득찼던 왜군들은 두려움에 빠지게 만들어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게 됩니다.


재계에서도 「이순신 리더십」열기가 뜨거워져, 임직원들이 단체 관람하거나 이순신 관련 서적들을 탐독하고 임원회의와 CEO 편지에서 그의 리더십이 집중 조명되고 있습니다.

경기 침체 장기화와 일본․중국 기업들의 약진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 산업계에, 400여년전의 이순신 리더십이 다시 부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충무공의 리더십을 배워 필사즉생(必死則生)의 정신으로 경영진과 사원들이 하나되어 위기극복의 기회로 삼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맞은 세월호 참사 전후의 모습은 마치 「이명박 정부」 출범후의 광우병 촛불시위 때의 형상과 너무나 닮아, 창조경제•규제완화•공공기관 정상화 등 그 무엇하나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제 정책의 무덤”으로 불리우는 국회 역시 경제 활성화 입법을 단 하나도 처리하지 못하여 재계•산업계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전방위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 경제도 부하들과 소통하고 솔선수범하는 이순신 리더십을 재계의 기업가 정신으로 부활시키는 연결고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때마침 4박 5일의 카톨릭 교황의 방한은, 친근한 이웃집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소탈하고 주저없는 소통의 “프란치스코식 리더십” 을 보여주었습니다. 한마디로 전형적인 “Sevant Leader"로서의 언어와 행동으로 참다운 지도자의 덕목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민초들과 함께 이룬 승리처럼, 프란치스코 교황은 남북간⦁계층간⦁지역간 갈등과 분열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소통과 통합⦁화해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돌아가셨습니다.


영화 명량이, 역사속의 이순신 장군이 잠자던 우리에게 우리 자신이 주인임을 깨닫고, 우리 스스로 리더인 것을 깊이 되새기게 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정치•재계•종교•사회 각 분야의 모든 지도자들이 그분의 리더십을 닮아, 솔선수범하고 소통하고 겸손의 자세로 낮은대로 임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대표이사 白 星 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