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발행년도 2011년 9월
제목 아버지와 아들



요즘 유행하는 유모어의「노숙자 시리즈」에 “서울역에 모여 있는 노숙자들이 신세타령하며 집에서 쫓겨나 노숙자가 된 사연을 하소연한다. 30대 노숙자는 식사하면서 반찬 투정하다가, 40대는 밥 먹고 후식으로 과일 달라다가, 50대는 외출하는 Wife에게 어디 가느냐하고 묻다가, 60대는 밖에서 만난 Wife를 아는 척 했다고, 70·80·90대의 하소연이 이어진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웃음이 쏟아지다가도 마음 한구석에 씁쓸함이 남아 있는 것은, 나이들어 아내로부터 구박(?)받고 있는 친구들의 하소연이 동병상련(同病相憐)으로 느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당당하게 일터로 나가고 가정 경제를 책임지고 남성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던 시절과는 달리, 은퇴후의 아버지는 배우자로부터 자식들로부터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집안일에 서툴고 부엌일에 익숙치 못한 아버지들은“한끼도 안먹는 남편을 영식님, 한끼는 일식씨, 두끼는 두식이놈, 세끼 다 먹으면 삼식이세(?)끼”라는 자조섞인 농담을 주고받으며 “요즘 남자들 참 불쌍해”라는 자기연민의 목소리가 이어집니다.

   

친구들은 흔히, 아내가 떠나갈 아들에게는 온갖 정성을 기울여 음식이며 옷이며 뒷바라지를 다하는데, 막상 남편에게는 당신 스스로 자립(?)하라며 냉대를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DNA와 성격도 그렇지만 아버지의 뒷발치를 보고 자라온 아들은 얼마간의 가치관과 나이 차이뿐이고 대부분 비슷하다 못해 똑같은데... 아들은 예쁘게 보이고 남편은 밉게 보이고...

결국 아내가 볼 때, 아들은 장점만 보이고 남편은 단점과 결점 그리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나쁜 버릇밖에 안보인다는 차이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새로 산 옷은 색깔도 선명하고 디자인도 깔끔한데, 오랫동안 입다보면 유행에도 처지고 실밥도 터져 헤질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옛날 김형석교수(연세대 철학과)의 수필 중「닭똥집」이라는 글이 있는데,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 씨암탉을 잡으면서 시어머니와 며느리간의 갈등(?)을 소개한 내용이 떠오릅니다. 닭중에 영양가가 높고 맛있는 똥집(사실은 저작을 위한 모래주머니)은 하나인데, 시어머니는 자기아들 그릇에 넣어주려 하고 며느리는 남편대신 자기아들에게 넣어줄려고 서로 신경전이 벌어지고 어떤 때는 마찰도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닭에「똥집」이 하나가 아닌 두개가 있으면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의 충돌도 막을 수 있다는 아쉬움을 적고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남편은 남의 편”인데 자신의 배속으로 난 아들에게 더 정이 가는 게 당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결혼하면 사돈의 팔촌”이 되고,“며느리 남편을 아직도 아들로 착각”하게 되고, 결국은“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될 것이 분명한데... 결국 나이가 들어 자신을 돌봐주고, 아껴주고, 걱정해줄 유일한 사람은 남편밖에 없다는 걸 왜 깨닫지 못하는지요?

     

50~60대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을 “외롭고 불쌍한 세대”라고 부르기도 하고, “낀 세대, 샌드위치 세대”라 말하기도 합니다. 과거의 아버지들에게는「권위와 절대 복종」이라는 무기가 있었고, 젊은 아버지들은 부부 맞벌이로 어깨가 가벼워져「자유분방함과 강한 개성」으로 무장되어 있어, 우리 아버지들이 권위를 앞세웠다가는 찬밥 신세가 되고 젊은 아빠의 흉내를 냈다가는 노망의 소리를 들을게 뻔합니다.

어렸을 때는 8.15해방과 6.25 전쟁을 겪었고, 학창시절은 보릿고개를 겪은 배고픔의 시절이었고, 사회 진출 후에는 산업현장에 휴일도 없이 불철주야 일해야 했고, 달러를 벌기위해 중동건설 현장, 서독광부 막노동으로 뛰어 오늘날“기적의 KOREA"를 이끈 주역들이었습니다.

그러나 IMF외환위기를 겪으면서, 家長으로써 가장 많은 생계비를 지출해야할 나이에, 중소기업 경영자는 도산으로 회사문을 닫게 되고 직장인들은「사오정」,「오륙도」라는 신조어를 만드는 실직의 아픔을 겪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신체적으로 남성호르몬이 감소하여 마음이 여려지고 매사에 소극적으로 바뀌게 되고, 집안의 경제권도 아내에게 넘어간지 오래이고, 돈 못버는 아빠, 출근하지 않는 남편, 그리고 남성의 기능까지 상실되어, 가족 모두에게 따돌림 당하고 바깥세상으로 부터도 외면당하는 불쌍한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이시대의 아버지는“막 우려낸 멸치”일지도 모른다며, 국물을 우려낸 멸치는 맛도 없을뿐더러 국물을 혼탁하게 하니 건져내 버리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나라만이 갖는“독특한 자식 뒷바라지”인“평생 AS”해야한다는 사회분위기는, 경제력을 갖지 못하는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마치 죄인이라도 된듯한 느낌으로 당당하기는커녕 고개숙인 남자가 되어버렸습니다.

     

년초부터 책상 앞에 “장남 결혼”을 붙여두고 올해에는 결혼해야한다는 직간접의 압력을 큰아들에게 행사해 왔습니다. 방학때 귀국하면 미리 준비해두었던 “맞선보기”행사(?)를 진행하였고, 일부 상대자와의 데이트가 몇차례 이어지기는 했지만 막상 8부 능선을 넘어서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신부감들의 나이가 30대를 넘은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전문직 종사자의 이유로 미국·캐나다로 이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혼사를 치를 수 없어 아들에게 귀국명령(?)을 내려, 어느 곳이든 국내대학이나 연구소로 옮길 것을 요구했습니다. 수학같은 기초과학은 그곳이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연구 환경이 좋다는 이유로 다소의 저항은 있었지만, 효자아들(?)은 아버지의 요청대로 KIAS(한국고등과학원)로 내년 1월까지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때맞추어, 착하고 예쁜 시골출신의 신부를 맞이하게 되어 “목표를 글로 적으면 이루어진다.”는 평소의 믿음대로 혼사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이왕이면 결혼휴직이 가능한 공무원인지라, Canada Otawa에서 외국 풍물을 익히고, 필요한 영어공부도 하고, 학업 때문에 15년이상 집을 떠나 fast food로 고생해온 아들에게 따뜻한 밥도 해주면서, 멋지고 꿈같은 신혼을 즐기라고 앞당겨 8月에 결혼식을 갖게 했습니다.

“Global시대에 외국 감각을 익히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미국과 캐나다의 아름다운 곳들을 관광하면서 다시는 가질 수 없는 신혼을 즐기도록 하거라. 돈걱정은 하지말고...그리고 너희들이 정말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라는 말을 며느리에게 전하였습니다. 어쨌든 주위 친지·친구들에게 결혼하지 않은 노처녀·노총각이 즐비한데, 20대 신부를 맞아 결혼해주는(?) 장남이 역시 아버지 마음을 편하게 하는 효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친구들끼리 모여 자녀이야기가 나오면, 나처럼 아들만 둘인 경우가 여럿 있지만 모두가 불쌍하다는(?) 시선을 보이곤 합니다. 아들·딸 구성에 따라 금·은·동메달로 나뉘어지고 아들 둘의 경우는「목메달」이라는 결론은 너무나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일면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훌륭한 아들은 국가에 바치고, 돈 잘 버는 아들은 사돈집 자식이 되고, 백수 아들만이 내 자식이다.」라는 유행어도 그렇지만,「대학생은 사촌, 군대 다녀오면 팔촌, 결혼하면 사돈의 팔촌, 애기 가지면 남남인 동포가 된다.」는 이야기는 결국 성장하면서 아버지와 아들은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는 관계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중국 등 외국의 경우 아직도 남아선호사상이 월등히 높은데 반해, 우리나라의 경우“딸이 더 좋다”는 분위기가 일반화된지 오래되었고, 통계청자료에도 2010년 여성비율이 남성을 엎질렀고 고등학생의 대학진학율도 계속 여자가 높다는 것은 남성을 압도하는 여성 Power를 실감하게 됩니다.

호주제 폐지에 따라「어머니 性」을 따를 수 있고, 장례문화와 제사가 간소화되거나 없어지고, 代를 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없어지는 요즈음 “키우는 재미”가 훨씬 좋은 딸을 선호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우리세대에서 아들에 대한 미련을 갖게 하는 것은 가문을 잇는다, 집안의 경조사 때 믿음직스러운 마음을 갖게 한다, 또한 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을 아들이 마무리해준다든지, 가업승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가 아들을 선호하는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아버지들은 “장남은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책임감, 적응력 그리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 무엇보다 집안일 그리고 부모에 대한 효심이 다른 형제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 우리집의 장남도 예외가 아닌 것 같습니다. 회사전근으로 서울·청주·울산 초등학교를 세번 옮겨 다니면서도 낯선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빗나가지 않았고, 학업에도 충실하였습니다. 과외 받지 않고 장학금 받으면서 대학 진학하고, 15년 동안 부모 곁을 떠나 생활하면서, 남들이 관심 갖지도 않는「수학자의 길」을 선택하여 학위를 받고 외국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니, 절반의 성공은 거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멀리 떠나 있어도 아버지의 건강을 항상 염려해왔고“너무 무리하지 마십시오.”라면서 눈물까지 보이는 장남입니다.

그러나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속마음을 드러내지도 않고 애정의 표현도 서툴러, 함께 지내면서 따뜻한 대화보다는 잘 해낼 것이라는 믿음의 시선으로 지켜보는 것이 부자지간인 것 같습니다. 나 역시 어릴 때 아버님과 대화보다는 침묵으로 서로를 이해하였고, 오랜 세월이 흘러 자식을 낳고 대학을 보내고 혼사를 치르고서야 돌아가신 아버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고, 아버님의 말씀이 깊게 다가오고, 지금에서야 “보고 싶은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는 말처럼 장남의 결혼을 지켜보면서, 손자의 혼사를 하늘나라에서 기뻐하실 아버님의 얼굴이 계속 Overlap되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두 아들의 혼사를 마무리하면서, 앞으로 아버지로써의 책무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기업의 CEO로써, 닥쳐오는 갖가지 위기와 유혹을 어떻게 물리치고 이를 도약과 변신의 기회로 삼아 “百年企業 LCC"로 당당하게 나아가는 것을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보통의 경우 은퇴하여 노후를 즐기고 있을 나이에도, 죽는 날까지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게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꿈과 열정을 가슴에 품고, 진정으로 가치있는 일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며느리가 보낸 편지에서 “아들의 마음을 빼앗아가는 사람이 생긴 것이 아니고, 부모님과 함께 아들을 사랑할 사람이 하나 더 생겼다.”는 말처럼 며느리가 아닌 딸을 얻게 되었다는 생각으로 함께 살아갈 것입니다. 아무쪼록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많은 아들·딸 낳아 훌륭히 키우고, 지금까지 주위로부터 받은 수많은 은혜들에 대해 국가와 사회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대표이사 白 星 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