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발행년도 2011년 4월
제목 메이와쿠(迷惑)



몇년전 친구들과 함께 후지산을 올랐습니다.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사진들에는 항상 그들의 상징인 후지산이 들어 있기에 호기심도 있고 해서 산행만을 목적으로 일본 시즈오카를 통해 정상까지 등산하였습니다. 일본인들도 “한번은 올라야 되지만, 두번 올 곳은 아니다.”라는 표현처럼, 멋있는 사진과 달리 돌과 화산재 밖에 없는 멋대가리(?)없는 후지산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산행을 마치고 일본식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고 마침 일본에 유학와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종업원(학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질문은, 식당방에 단체 손님들이 들어가 식사하고 있는데 한국사람, 일본사람 구분하는 방법을 아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방에서 들려오는 언어, 조용한가 시끄러운가, 주문한 메뉴 등으로 알 수 있다는 대답이었지만 그녀는 벗어놓은 신발을 보면 안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어느 장소를 가든지 신발을 벗어야 되는 곳이면 들어갈 때 신발을 벗어 나갈 때 편리하도록 신발앞이 바깥쪽을 향하도록 돌려놓는다는 설명이었고, 그런 방향으로 정돈되어 있으면 일본손님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반대로 한국손님신발은 벗은 그대로 흩어져 있고...

우리들 생각으로는, 그냥 들어가 식사하고 나올 때 돌려 신으면 되는데 왜 저렇게 불필요한 행동을 할까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일본인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나올 때 편해서요”라는 반응이고 들어갈 때 몸을 돌려 신발을 벗는 불편함보다, 나중일을 미리 마무리했다는 안도감과 편안한 느낌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3.11 대지진에서 일본인들이 보여주는 배려와 시민의식에 세계가 감탄하고 있다는 외신보도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진도 9의 강력한 지진과 시속 700km의 쓰나미 그리고 원전 방사선 누출사고로 국가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일본 국민들의 냉정과 침착함에 대하여 세계가 놀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지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일본의 시민의식은 인류가 더 강해지고 있고 인류의 정신이 계속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라는 내용으로 극찬하고 있습니다. 삶의 터전이 쑥대밭이 된 상황에서도 일본인들은 “학교의 모범생”처럼 자연재해나 전쟁에서 흔히 나타날 수 있는 부조리나 비행이 전연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여진이 계속되는 가운데에도 인내와 이해 그리고 남을 위한 양보와 배려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담요를 둘로 찢어 나누어 쓰는 사람들, 식수와 석유를 사기위해 배급소앞에서 불평없이 수백미터 줄지어선 사람들, 먼저 왔다고 욕심내지 않고 뒷사람을 위해 자기 먹을 분량만큼의 라면·주먹밥을 사는 사람들... 피해현장의 어느곳에서나 목격할 수 있는 장면들입니다. 식수차앞에 어느 누구도 “물을 더 달라.”하지 않았고, 절망과 혼란속에서도 무서울 만큼 질서정연하여 새치기나 사재기, 절도사건이 거의 없는, 바로 이것이 세계 2~3위의 경제 대국 일본의 저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일본은 메뉴얼대로 움직이는 “메뉴얼 사회”라서 천재지변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함께 받고 있습니다. 대형 쓰나미로 도로가 끊겨 교통수단이 제대로 없다 하더라도 헬기로 식품과 생필품을 공수할 수 있는데도, 많은 이재민들을 추위와 굶주림에 떨게 하고 있는 것도 정해진 메뉴얼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이라 합니다.

     

회사 업무 또는 관광으로 수십차례 일본을 방문·여행하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시민의식」에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온천에 들려 목욕을 할 때도 비누·샴푸·수건·가운등 여러사람들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물품을 반드시 제자리에 갖다 놓는 그들의 습관을 우리의 모습과 비교하고는 부끄러운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Hotel에서 자고 이른 아침 산책을 하면서 또 놀라운 것은 단 한대의 불법주차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승용차를 가지려면 주차증명확인서가 유첨되어야 한다지만, 타지역으로 여행을 가는 경우처럼 자신의 주차장을 이용할 수 없는 경우에도 반드시 허가지역에 주차하는 그들의 모습은 독특하게만 느껴집니다. 또한 일본 관광객이나 단체들은 이동할 때 리더의 깃발을 따라 한줄로 나란히 서 움직이는 모습을 자주 목격합니다. 이러한 일본인들의 행동양식은 어릴때부터 배우고 익혀오는 “메이와쿠(迷惑)”정신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메이와쿠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사람으로 말미암아 겪게 되는 폐, 귀찮음, 성가심, 불쾌감, 괴로움 등”이며, 태어나 가정에서, 학교와 사회에서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말을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듣게 되고 교육받아온 결과라는 것입니다.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일본인을 구해주었더니 “살려줘서 고맙다.”는 말 대신 “폐를 끼쳐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일본인들의 메이와쿠는 민족성이라기보다 섬나라라는 지리적 여건이 감안된 교육의 결과라는 것이고, 섬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지진/해일/화산폭발의 자연재해가 빈번한 곳에서 상대를 배려하고 질서를 지켜야만이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재앙 앞에 침착하게 대처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에 사람마다 다소 다른 시각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너무나 냉정한 모습이 마치 로봇과 같다는 의견도 있고, 일본과 일본인을 좋아하지 않던 사람이 이제는 믿고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대피소에서 50명의 사람들이 10그릇의 우동을 두고 서로 양보했다는 이야기, 위정자들에게 항의하거나 원망하는 사람이 없고, 수만명의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했는데도 단 한사람도 TV앞에서 울음을 보이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기이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슬픔을 드러내 울거나 통곡하면 남에게 더 큰 가슴의 상처와 피해를 줄 수 있다는「메이와쿠」정신이 작동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의 부모들은 자식이 밖에서 남에게 매를 맞고 들어오면 화를 내고 오히려 가해자의 입장이 되기를 바라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일본사람들은 오히려 매맞고 들어오면 남의 자식에게 폐를 끼치지 않게 되었다고 좋아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라는 광고카피는 일본에서는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개구쟁이라는 것은 남에게 폐나 불쾌감을 주는 어린이를 뜻하는 것인데 이런 광고가 일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고,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대재앙에 대응하는 일본인의 모습은, 경이로움을 넘어 우리들에게 새롭고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일본TV에서 유가족의 통곡은 찾을 수 없고 흐느낌은 작고 슬픔은 속으로 삭히려는 그들의「메이와쿠」정신은 우리 국민들의 시민정신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재난이 발생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유가족들의 통곡, 천재지변에 준하는 이유로 비행기 출발이 늦어져도 창구에 몰려가 항의하는 경솔함, 준법대신 목소리 높이면 이길 수 있다는 사고방식, 끼어들기와 담배꽁초를 길거리에 마구던지는 자동차문화, 그리고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의 반성보다는 남을 먼저 탓하는 풍토 등 우리들의 부끄러운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대지진은 일본국민의 우상숭배와 무신론에 대한 하느님의 경고”라는「조용기 목사」의 강론은 씁쓸한 마음을 갖게 하고, “이번 재난으로 新한류에 타격을 입을까 우려된다.”MBC 초기보도는 속보이는 욕심을 들킨 것 같습니다. 또한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통해 “일본으로부터 방사능이 몰려온다.”는「방사능 괴담」은 몇년전의「광우병 괴담」과 너무나 흡사하여, 근거없는 유언비어가 또 다시 국민들을 불안케하고 있고 정부당국에 대한 불신으로 확대되고 있어 안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대지진과 쓰나미에 의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폭발사고는 일본전역의 방사능 공포로 확산되고 있어, 원전사고수습에 대하여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자력발전소 내에는 500여명의 작업인원이 방사능 누출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전원복구와 물투입 작업등의 위험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익명으로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어 “최후의 결사대”, “이름없는 영웅들”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마치 2차대전 말기 전투기에 폭탄을 싣고 연합군 함대로 돌진했던 “가미가제 특공대”의 사무라이정신을 연상케 하고 있습니다. 정년퇴직을 몇달 앞둔 59세의 어느 원전직원도 사고현장으로 자원하면서 “인생에 있어 후퇴를 남기지 않기 위해 결정했다.”고 말했고, 부인은 마지막 모습이 될지 모르는 남편을 보내며, "후쿠시마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달라.“는 당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진에 대한 인간의 무력함 그리고 백혈병등 방사능 피폭에 의한 죽음에 대적하는 인간의 위대함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우리 국민들 사이에 “힘내라 일본(간바레 닛폰)”운동과 일본인돕기 성금모금이 자발적으로 펼쳐지고 있어, 그동안 쌓여왔던 반일감정이 없어지고 어쩌면 “진정한 이웃나라”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 지진·화산·쓰나미가 없는 한국땅은 일본인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한반도 침략의 결과로 임진왜란, 한일합방의 일그러진 역사는 일본·일본인에 대한 나쁜 감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경제발전은 한국에게 크나큰 자극과 도전정신을 키워줬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소니와 도시바가 있었기에 한국의 삼성·LG전자가 성장할 수 있었고 도요타와 혼다의 Global정신이 현대·기아차의 수출과 해외진출의 계기가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의 축구와 야구는 한국스포츠의 경쟁과 발전을 가져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수십만명이 참여하는 일본돕기의 성금모금은, 금액 액수를 넘어 한일간의 묵은 감정을 말끔히 지우고 양국민간의 마음의 벽을 허물고 진정한 이웃이 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대표이사 白 星 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