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발행년도 2009년 9월
제목 나의 길


몇달전 조선일보에는 색다른 뉴스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서울지법원장을 지낸 강봉수 변호사가 어릴 때의 꿈을 다시 이루기 위해 물리학공부 미국유학길에 오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억대의 연봉을 받는「대형 로펌회사」의 고문변호사 자리를 던지고, 더구나 66세의 나이에「물리학도 강봉수」라는 인생2막을 시작하는 그분의 열정에 그저 고개가 숙여질 뿐입니다. 이공계를 전공한 사람들이 인문 상경계의 석박사 과정을 밟는 것은 가끔 볼 수 있지만, 인문·상경 전공자가 가장 어려운 학문중의 하나인「물리학」에 도전하는, 더구나 환갑이 훨씬 지나 칠순을 앞둔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결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고교시절「이과반」이었으나 아버님의 간청에 따라 법관의 길로 나섰지만, 2000년 법원 판사 생활을 마치고 5년전부터 틈틈이 시간을 내어 TOEFL 공부도 하고, 물리학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여 드디어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강변호사는 법원 재직시 “아름다운 법관”으로 불리웠고, 공직자 재산공개 때도 최하위권이었지만 사재를 털어 오갈데 없는 청소년들을 보호하는 “그룹홈”을 18년간 부인과 함께 운영하는 등「노블레스 오블리스」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50대 은퇴후「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많이 보게 됩니다. 얼마남지 않은 인생 - “지금까지 일에만 매달려온 탓에 한번 밖에 없는 내 인생 멋지게 장식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각양각색의 취미생활에 매달리기도 합니다. 화초가꾸기부터 산악자전거나 패러글라이딩,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수상스키나 요트를 즐기기도 하고, 악기를 배워 밴드를 결성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전공이 퇴직후에도 이어지는 전문직의 세무사·변리사·회계사·변호사들은 여유를 가지고 또한 제2의 인생을 시작하지만, 변변한 기술·자격증이 없는 보통의 사람들은 주유소·경비원·택시기사등 단순직의 직업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제2의 인생을「봉사의 길」을 택하여 남은 인생을 희생과 봉사 그리고 베품으로 마무리하겠다는 분도 많이 있습니다. 전공을 살려 영어강사나 안내원이 되기도 하고 병원이나 법원에서 도우미역할로 봉사의 길을 걷는 분도 많이 있습니다. 평생을 해오던 천직(天職)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면, 비로소 자신의 마음속에 간직해왔던, 자신이 하고 싶어 했던 일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데 까지

바라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봤습니다...”


라는 프로스트의「가지 않는 길」의 한 구절처럼... 짧고 유한한 人生길에서는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되고,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고, 그리하여 “가지 않는 길”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야만 되겠지요. 이렇게「가지 않았던 길」,「가지 못했던 길」을 다시 찾아 나선 분들중에는 김준성 전경제부총리, 이진영 전건설부차관의 경우도 특이한 것 같습니다. 63세에 관직을 떠난 김부총리는 소설쓰기에 몰두하여 장·단편 소설 수십편을 발표했고 재작년 87세로 타계하였습니다. 38세 때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지만, 계속 은행 요직을 맡으면서 문학의 열망을 가슴속에 묻어두어야 했고, “소설가 김준성”으로 오래 기억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국토개발연구원장과 중부대총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이건영씨도「존엄사」를 조재로 한 “마지막 인사”라는 소설을 출판하여, 소설가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2009년 9월 2일 제가 태어난지 만 60년이 되는 날로 소위 다시 태어난다는「환갑」을 맞게 되었습니다. 잔치도 없고 해외기념여행도 없고, 주위로부터의 축하인사, 그저 아내와 두아들로부터 받은 선물과 축하 Message가 전부입니다. 배고프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는 시골동네에「환갑잔치」가 가장 많았고, 잘사는 사람이나 못사는 사람 모두 빚을 내서라도 잔치를 벌이곤 했습니다. 50-60년대만해도 평균수명이 50세 전후였으니, 60살까지 살아있다는 것은 축복일 수 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그러나 지금은「환갑잔치」라는 것을 들어 볼 수가 없는데, 평균수명이 80이상인데 60살 잔치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지나온 날들을 뒤돌아보며, 지금이라도 인생관·가치관을 다시 가다듬어 죽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갖는 게 전부일 것입니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아직도 현역에서 뛰고 있는 나에 대한 부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평생 일만 할꺼니? 이제 좀 즐겨야지”라는 충고(?)를 받기도 합니다. 상갓집에서 만나는 知人들은, “뭐니뭐니해도 건강이 최고야. 이 나이에 Stress 받으면 바로 가는 거야.”라는 진심어린 조언을 해줍니다. 때로는 해외Golf여행을 같이 가자는 친구에게, 회사를 그렇게 비울 수는 없다는 나의 답변에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인데, 벌어놓은 돈 좀 쓰고 살아야지. 재산 남겨봤자 자식만 좋아한다고...”라는 잔소리를 듣게 됩니다. 주위의 친구들, 그리고 많은 至人들의 충고는 모두가 수긍할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고, 마음 한 구석으로는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창업 후 12년 동안 LCC와 함께 걸어 오면서 많은 것을 일구어 냈습니다. 97년 외환위기와 최근의 금융위기를 맞으면서도 회사성장은 계속되었고, 1·2·3 공장에 이어 4공장 준공도 눈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화장품 국내 생산량 1위, Dispenser 가글 1위, L/C 최대 생산과 최고의 공장가동, 그리고 미국·일본·중국 수출이 확대 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LCC의 독특한 기업문화와 함께 세계적 다국적 기업인 BDF와 Unilever에 단독으로 전량 공급하게 된 것은, LCC가 그만큼 Gloval 품질/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LCC가족들은 많은 것을 이루어냈지만, 아직도 해야 될 일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Hand Sanitizer의 Top Brand화, PB브랜드 가글의 약국과 대형 mart로의 진출, 사우나, 스포츠 센터의 화장품 M/S 1위, 그리고 대기업들이 할 수 없는 화장품 틈새시장을 개척하는 등 아직도 넘어야 할 山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를 위해 “나는 LCC와 결혼했고, LCC와 백년회로 해야겠다.”는 나 스스로의 다짐입니다. 지난 7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도 예선 탈락한 영국 British Open에서 준우승한 톰 왓슨은 “인생은 60부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사실을 중계를 지켜보는 세상 사람들에게 분명히 보여 주었습니다. 1949년 9월 4일 生, 나보다 이틀 늦은 60세 노장도 “위대한 도전”에 성공하고 있는데, 나 역시 “百年企業 LCC”를 위한 평생의 도전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에게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에게 이길 수 없다.”라는 말은 평생 일만 하는 남자들에게는 반드시 새겨야 될 말입니다. LCC와 함께 하는 새로운 도전도 Enjoy하는 평상심만 유지할 수 있다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얼마전 암투병을 숨긴 채 매주 9시간 강의를 소화해내고 종강 후 한달만에 하늘나라로 간 연세대학교 토목공학과「송하원 교수」의 이야기는, 세간에 많은 화제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례식 때 들어온 부의금3000만원도 전액 장학금으로...

사람은 누구나 죽기 마련이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여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매달려 자신의 삶을 정리할 시간도 갖지 못하고 바둥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음의 死神이 눈앞에 닥쳐와 있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마무리 하고 차분히 주변을 정리하고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암수술로 건강의 위기도 겪었지만 송교수처럼 마지막 그날까지 하늘이 준 나자신의 소명을 다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아름다운 세상과 기쁜 마음으로 작별하는「나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싶습니다.

 

대표이사 白 星 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