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발행년도 2009냔 8월
제목 공장 건설



회사 설립을 마치고 “공장 건설”에 막 착수할 시점인 1998년 2월초, 독일 BDF의「기술 점검반」이 LCC를 방문케 되었습니다.Nivea 생산공급을 승인하였지만, 과연 BDF화장품 생산이 가능한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그리고 관리품질의 문제점이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한국을 방문하였던 것입니다.

「Car Lift」를 제작하던 공장부지를 매입하고, 쇠조각과 오물투성이인 공장전체를 외부인력을 이용하여 2개월간 구석구석 청소하고 있었고, 공장건설을 조기에 완료하여 Nivea를 공급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화장품 제조시설을 하나도 갖추지 못한 채「독일 점검반」을 맞은 나는 민망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였지만, 3개월 후에는 공장준공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독일 손님들을 당당하게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제조설비 전반을 갖추는데 얼마나 걸리지요?”

“3개월이면 충분합니다.”

“독일이라면 적어도 1년 6개월이 소요됩니다.”

“이미 설계가 완료되었고, 기계 및 설비들의 발주가 진행되고 있으니 5월초에는 준공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한국과 LG를 자주 방문하였던 Mr. Bitter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독일로 돌아갔고, 열흘가량 지난 후 최종 Report를 제출받게 되었습니다.

“Nivea production is impossible in LCC (LCC에서 Nivea제조는 불가능하다.)”라는 결과가 나왔지만, “하루는 8시간이 아니고 24시간이다”라는 말로 그들을 설득하였고, 결국 3개월후인 5월 8일에 준공식을 갖게 되어 그들과의 약속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1973년 대학 졸업을 앞두고 LG에 취업을 하게 되었고, 부산에 있는「초읍공장」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입사 동기와 한방에서 하숙을 하면서 대학원 진학을 논의하고 시험준비를 거쳐「석사과정」에 합격케 되었습니다.「무역사」자격증도 따고「무역거래 관계법」을 공부하고, 수출입 업무를 처리하면서 해외지사에 근무하는 나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드디어 대학원 논문도 Pass되고 졸업과 동시에 서울「종합무역상사」로 직장을 옮기려는 계획이 추진되던 중,「공장 건설 책임자」로 덜컥 발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부산 대도시 중심에 위치하고 있던 LG의 치약·칫솔·비누공장이 지방으로 이전하게 되면, 각종 세제 혜택과 함께 공장부지 매각 자금으로 대규모 공장 건설이 가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치약은 청주로, 비누는 울산으로 이전키로 확정되었고, 울산의 비누·지방산·글리세린 공장을 설계하고 건물을 짓고, 기계/설비를 발주내고 생산마무리까지의 책임자로 발령받았던 것입니다. 그 당시 화장비누의 미국 수출이 급증하고 있었고, 東山의 Dial 비누에 이은 만년 M/S 2위에서 벗어나 화장비누 Top maker로 도약할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시점이였습니다.

 

대학 시절「PLANT DESIGN」이라는 과목을 이수하고 많은 흥미를 느끼며 열심히 공부하였지만, 어디까지나 이론에 불과하였고, 설비 Layout 및 Process설계는 가능하였지만Pump, Mixer, 열교환기등의 설계 능력은 전연 갖추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전연 경험치 못하였던 공장건물의 설계를 위한「건축사무소」직원들과의 합숙 역시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공장 건설은 매우 복잡하고 내외부 변수가 많아 공기를 맞추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건축·기계·배관·Process·전기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Project team을 구성하여 설계·업체선정·발주·시운전등의 수순을 밟게 됩니다.

먼저 생산제품과 Capacity가 결정되면, 그에 맞는 공장입지가 결정되고, Process·Utility·기계설비의 설계가 진행되어 Layout가 확정되고, 이에 따른 건물·토목설계가 진행됩니다. 기계 및 생산설비들의 제작에 많은 시행착오가 따르기도 하지만, 화학공장에서는 특히 배관설계·시공에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더구나 비누·지방산공장의 경우 배관의 가열·보온공사가 따라야 하므로 세심한 설계·시공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된「공장 건설 책임자」로서의 경험은 6년이나 계속되어, 새로운 도전 그리고 새로운 공장이 준공되었을 때의 성취감과 만족감은 어느 것과도 비교되지 않는 경이로움이었습니다. 그러나 공장건설에 대한 공부를 새로이 하면서 휴일없이 밤낮으로 뛰어야 했고, CEO에게 년간 몇차례 품의 결재를 맡아야 할 때는 여관에서 열흘이상 합숙으로 밤을 새우면서 각종 자료 검토, 업체 선정과 가격 Nego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회사와 공장 건설에만 전념한 탓으로 건강에도 이상이 왔고, Wife 역시 결혼생활에 대한 회의감으로 위기가 오기도 하였습니다. 공장 건설이 1,2차 마무리 될 즈음, 체중이 53Kg에 이를 정도로 쇄약해져 고향에 내려가 휴식을 취해야 하는 어려움도 겪은 기억이 생생하게 납니다.

60평생에 가장 어려웠던 시기가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단연 공장 건설기간 6년이라 대답할 수 있습니다. 건강의 고비도 넘겼고, 가정의 위기도 있었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혀 공장 관리, 특히 공장 건설이라면 “눈감고도 해낼 수 있다.”고 착각 아닌 자신감을 갖기도 하였습니다.

Nivea 사업 그리고 지금까지 LCC가 중소제조업으로 정도를 걸어왔고, Vision이 있는 성공적 기업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건전하고 올바른 기업 문화, 정도·투명경영, ERP와 MES/POP의 전산화 그리고 끊임없는 표준화를 통한 System 경영에 대한 노력이 라는 것들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신속한 투자결정과 공장 건설, Layout과 자동화의 우수성, 필요시 마다 speedy한 합리화투자가 일어나 가격/품질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휴일없이 밤낮으로 계속되는 공사현장을 지키면서 치밀하고 완벽한 설계를 할 수 있는 책임자로 30년을 함께 해온「원성연 이사」에게 크나큰 고마움을 느낍니다. 4공장 건설이 피크를 이루고 있는 이때, Layout 보완, process 수정, Rack 빌딩 및 건물 보정을 위하여 현장을 쫓아다니는 나 자신의 얼굴에는 한없는 기쁨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대표이사 白 星 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