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친구가, 모은행 부행장으로 은퇴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은퇴한지 2년쯤 지나서 일입니다. 아내가 불쑥 「어디론가 없어져 주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30여년 직장생활에서 받은 월급과 퇴직금은 고스란이 은행통장으로 아내에게 전달되었고, 여기저기 부동산․증권 투자와 함께 경제권은 모두 그녀에게 주어져 일상생활의 용돈도 얻어쓰는 처지였습니다. 현직때는 사교․골프모임으로 부부동반의 행사도 많았지만, 이제는 더치페이式에 그나마 그런 초청도 없어지고 결국은 아내의 사회적 욕구와 체면 유지에 아무런 도움도 못주고 있어, 모든 모임은 따로 따로 참여하는 형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집에서 나라는 사람은 아내, 자식들 모두에게 「불필요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은퇴한 중년남자들의 이야기는“누레 오찌바”(물에 젖은 낙엽은 빗자루로 쓸어도 잘 치워지지 않는다라는뜻으로 은퇴한 남편들이 아내나 가족에게 비추어지는 비유의 뜻임) 신세를 느낄 수 있고

어쩌면 (兎死拘烹,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 먹는다라는 뜻으로 필요할 때 요긴하게 써먹고 쓸모가 없어지면 가혹하게 버린다는 의미)의 처지인지도 모릅니다.

여자 나이에 따른 유모어에는 “여자 40대는 잘배운여자나 못배운여자 똑같고, 50대는 잘난여자나 못난여자 똑같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전자는, 여자는 자신의 학력․지식 수준의 높낮이보다는 남편의 사회적 경제적위치에 따라 대우받는 것이고, 후자는 여자 50이 되면 젊을때의 미모는 아무런 소용없이 늙음으로 덮여질 수 밖에 없고 오히려 남편의 경제력등에 의해 대접받게 된다는 은유의 뜻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본인보다는 남편의 사회적 성공에 따라 아내의 성공이 비례될 수 밖에 없는 지금의 50․60대 부부는 오늘의 자신의 위상은 남편에 의하여 만들어졌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얼마전 성묘차 시골에 갔다가, 고향친구에 대한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듣고 “아니 그럴수가 있나?”하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친구는 얼마전 위암수술을 받고 요양중이며, 다행히 초기발견이라 투병생활에 최선을 다한다면 위험수위는 넘어설 수 있다는 의사의 진단이었습니다. 암을 이겨내어야겠다는 의지와 함께, 생활 Patten을 바꾸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그에게, 아내로부터 이혼요구를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내로부터 간병은 물론이고 (환자)식사도 제대로 도움받지 못하였지만, 30년 살아온 아내의 이혼요청은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와,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인생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부부사이에 있었던 자세한 사연은 알수가 없습니다.)

일본에서 커다란 사회문제로 번졌던 황혼이혼(남편이 은퇴하면서 퇴직금을 받으면, 기다렸다는듯이 남편의 결혼생활 중 비행(?) List와 함께 이혼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보편화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습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이혼소송중 20%가 황혼이혼이며, 이혼청구자의 80%가 여성이라는 것은 여권신장을 넘어 중년남자들의 처지가 외롭고 불쌍한 신세로 급락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년남자들이 치르는 또하나의 고통은, 아내가 겪는 갱년기 그리고 우울증 증세는 남편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아프다는 이유로 종합검진은 말할 것도 없고 MRI, CT, PET등 갖가지 최첨단장비로 검사를 하여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견디지 못해 모든 직장 일을 접어두고 아내의 간병에 메달리거나, 물좋고 공기좋은 곳으로 장기휴가를 가는 사람, 아내의 짜증과 고함 소리에 병적인 노이로제 증세를 보이는 남편들도 생기고 있습니다.

매주 북한산등반을 함께하는 친구들에게도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독서와 함께 작은 텃밭을 가꾸면서 살고 싶다는 아내의 결정(?)에 따라 강원도로 이사를 가게 되는 P, 퇴직과 함께 “평생 내가 당신을 모시고 살았으니, 이제 당신이 나한테 serve해야 되지 않겠나?”라는 선언과 함께 멀리 시골학교 교사로 떠나버린 L, 갱년기와 함께 아파트 등기이전을 요구하는 A등 웬만큼 경제적 여유를 가진 가정에는 대부분 아내의 갱년기․우울증 증세로 4~5년간 크고작은 소동들이 벌어지곤 합니다.

아내들의 주장은, “평생 자식 키우기와 남편 뒷바라지에 내 모든 것을 바쳐왔는데, 내 인생은 어디에 있었는가? 지금부터라도 나만의 인생, 희생에 대한 대가로 남은 인생을 enjoy하면서 살아야 하겠다”로 요약됩니다.

우리 남편들은 “남자들이 직장에서 stress 받으면서 삼팔선․사오정․오육도 신세가 되지 않으려고 몸부림쳐왔던 것은 누굴 위한 것이었나? 바로 아내와 자식을 위한 것이었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얼마전 D일보에 “울고 싶은 남자들”이라는 제목으로 일주일간 기획취재한 기사들이 실려 「한국의 중장년」층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적이 있습니다. 첫날 「가정의 외딴섬, 家長」에서는 “젊음과 건강․자신의 행복은 포기한 채 직장일에만 매달렸던 남자는 「돈 벌어주는 아빠」의 신세로 전락하고, something(대단한 무엇)에서 nothing(별것아닌)으로 오그라진 자신의 위상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날 기사는 기러기 아빠들의 애환을 고발하면서 자녀들에게 결혼후에도 뒷바라지해야 하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평생 애프터 서비스(AS)"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퇴직금을 수령한 家長은 노후를 대비해 적금등 재테크계획을 세웠지만, “아빠, 퇴직금 받았죠. 저 유학 보내주세요!”라는 자식의 요구에 난처해 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3번(아들)아 찾지 마라 6번(아버지)은 간다” “이모만 있고, 고모는 없다”등으로 사면초가에 빠진 중년들의 애환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의 “홀로 아리랑”은 아내의 사별, 기러기 생활의 홀아비는 말할 것도 없고, 아내의 이혼요구로 벼랑 끝에 몰린 중년남자들의 외롭고 쓸쓸한 모습은 우리 모두를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여자들의 반란”이야기는 여기 저기 너무나 많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갱년기를 맞은 아내들은 밖으로 돌면서 가정에 소홀하고, 남편을 구박하기도 합니다. 여성들의 신체적 변화는 남편의 외조도 필요하지만, 스스로 신앙생활, 운동․취미 독서등으로 풀어나가는 지혜를 익혀야 합니다.

직장에서 은퇴하여 경제적 능력을 상실하였다고 그들을 냉대하여서는 아니됩니다.

지금의 안정된 생활은 그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됩니다. 병들은 남편을 소홀히하고 「이혼」을 강행하여 그들을 외딴섬으로 내몰아서는 안됩니다. 그들이 가진 병마는 가족을 위한 경쟁과 스트레스의 산물이라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문득 아프리카에 있는 동물의 왕자 「숫사자」의 최후가 떠오릅니다. 늙고 병든 숫사자는 무리에서 쫓겨나 물한모금 마시지 못한채 굶어 죽어가고, 사자 주위에는 죽음의 냄새를 맡고 달려온 「하이에나」의 먹이가 되어 일생을 마친다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밀려나고, 정붙일 곳 없어 늘 외롭고, 가족과 따뜻한 대화를 나누기도 어렵고, 집안일에는 서투르고, 나이들어 필요한 돈주머니는 안사람에게 빼앗긴지 오래입니다.

한국사회에서의 남성 노년생활은 세계 어느 나라와도 비교되지 않을만큼 힘들고 고달픈 처지라는 것을 절감하게되고, 마치 숫사자와의 운명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부부란 반백년 가까이 동행하면서 동고동락(同苦同樂)하고, 상부상조(相扶相助)하고, 공생공영(共生共榮)하는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는 것을 아내들은 잊지말아야 합니다. 결코 「행복한 이혼」은 있을 수 없다는 것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