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전 전직 경찰관이 집필한 「아버지」라는 소설이 베스트 셀러가 되어 「가시고기」라는 말과 더불어 우리사회에 “아버지 신드롬”을 오랫동안 이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지방대 출신으로 뒤늦게 행정고시에 패스하여 인간승리의 주인공으로 신문에 소개되기도 했지만, 연줄없고 고지식한 그는 한직으로만 돌게 되었고, 과로․스트레스로 인한 체장암 말기로 전신에 암이 전이된 상태로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동기들에 비해 뒤처져있는 승진, 한직을 맴도는 남편에 대한 실망으로 등을 돌리는 아내, 이른 출근.늦은 귀가.무표정한 얼굴로 점점 멀어져가는 자식들로 한 집안의 가장, 아버지는 마누라에게 구박받고 자식놈들에게 따돌림받는 외로운 신세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딸의 S대 영문과(정원 35명)에 합격을 기원하는 뜻에서 일년동안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내릴 때도 35번이내에 들기 위하여 플래트홈을 뛰어 다녔고, 직장 출근 순서도 35번째 이내에 들어가기 위해 아침밥을 굶기 일수였고, 매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관악캠퍼스를 찾아가 “부디 내딸을 당신의 학생으로 받아주소서”라는 기도를 드리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자녀와 아내 사랑에도 임종시까지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아버지」의 슬픈 이야기는 “대한민국 아버지”들의 어렵고 힘든, 축처진 어깨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족부양은 몽땅 자신의 책임인양, 직장에서 명퇴를 피하고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잦은 흡연․음주, 그리고 끊임없이 다가오는 스트레스는 건강관리에 적신호가 켜질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문득 죽어서까지 자신의 몸을 새끼들의 먹이로 내어주는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나타내는 「가시고기」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엄마 가시고기가 수초에 알을 낳고 떠나가면, 수정.부화시키고 다른 고기의 먹이가 되지 않도록 보살피고, 알이 숨을 쉬도록 지느러미로 부채질하여 산소공급을 하고 잘 부화할 수 있도록 둥지를 떠나지 않습니다.

둥지를 짓고 새끼들을 모두 안전하게 떠나보낼 때까지 15일간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새끼들을 위해 혼신을 다한 「아버지 가시고기」는 둥지 앞에서 최후를 맞이하고 떠나갔던 새끼들은 둥지 앞으로 돌아와 아비의 살을 파먹게 됩니다.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이, 마치 「아버지 가시고기」와 같은 일생을 보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결코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라는.....

얼마전 TV뉴스에 우리나라의 「기러기 아빠」실태를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낯익은 많은 유명인사들이 자녀 유학으로 가족들을 캐나다. 미국. 호주로 보내고 혼자서 생활하는 외로운 모습들을 담은 내용들이었습니다.

자식을 유학보내고 국내에 혼자 남은 家長을 지칭하는 “기러기 아빠”는 누가 처음 사용하였는지 몰라도 절묘한 어휘선택인 것 같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이별의 아픔이나 부부애를 상징하는 소재로 기러기를 잘 인용해 왔고 알을 품은 암컷을 보살피는 숫컷이나 떼지어 날라가는 무리들의 단란함을 부러워하고 안타까워 하는 마음으로, 자식의 공부를 위하여 혼자사는 고충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家長을 “기러기 아빠”로 불렀던 것 같습니다.(부부애가 두터운 것을 원앙새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원앙은 바람둥이이고 절개와는 거리가 멀다고 합니다.) 이러한 기러기 아빠들의 연이은 자살소식들이 계속 소개되었고 “지난 3월 서울 방이동에서 가족과 떨어져 혼자 생활하던 50대 기러기 아빠가 집안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4년전 아내와․아들․딸을 캐나다로 보낸 뒤 혼자 생활해 오던 그는 지병인 고혈압 증세가 악화되고 사업이 기울면서 심한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IT분야에서 촉망받던 40대 교수는 평상복 차림으로 소파에 가만히 앉아 숨져 있었다고 한다. 부인과 12,15세 두아이를 미국에 남겨둔 채 외로운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던 그의 죽음을 두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애석해하고 있다” 라는 뉴스들은 우리 모두를 우울하게 만듭니다.

기러기 가족의 가장 큰 문제점은 멀리 이국땅에 살다보니 가치관․사고방식이 서로 달라 가족간에 벽이 생기고 갈등․마찰을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기러기 아빠들은 혼자 살다 보면 갖가지 유혹에 빠져들기 쉽고, 유학비용등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으며 불규칙한 생활․식사로 건강이 악화되거나 외로움으로 인한 「돌연사」도 발생한다는 것입니다.(자기 컨트롤에 실패하는 일부 “기러기 엄마”들의 정신우울증․외도․탈선 소식도 교포사회에 자주 등장 되곤 합니다.)

“기러기아빠”를 보면 우리 민족이 자녀교육에 얼마나 헌신적인지를 느끼게 해주고 있고,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에서만 볼수 있는 “스스로 선택한 생이별의 이산가족”인 것입니다.

50代 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아버지들, 1946년에서 1955년 사이에 태어난 이들을 우리 역사는 “불쌍한 세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는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육이오전쟁을 겪었고 학창시절은 보릿고개를 겪는 절대후진국이었고, 20-30대 때는 산업현장의 근로자로 뛰면서 중동의 인부.서독의 광부로써 고도성장의 나라 코리아를 이끈 주역들이었습니다.

하지만 40․50대에 들이 닥친 IMF외환위기는 정리해고라는 딱지와 함께 「사오정」 「오육도」라는 신조어를 낳기도 했고, 많은 기업들을 도산으로 몰고 가기도 했습니다. 이 세대는 「家長」으로써 가장 많이 돈을 벌고 가장 많은 생계비를 지출해야할 나이에 IMF를 겪었고 직장에서, 일터에서 밀려나 머무를 곳이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경우나 실직 상태에 있는 아버지가 일을 가진 남성보다 자살확율이 19배나 더 높다는 보고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나이가 들면, 신체적으로 남성 호르몬이 줄고 정신적으로 상대적 박탈감이 강해져 서운한 일도 많이 생기고 성격도 소극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남들과 터놓은 대화가 어려워지고, 여려진 마음에 혼자서 눈물 흘리기도 하고, 어릴때 친구 ․ 고등학교 동기생들을 만나 젊은 날의 화려했던 추억을 살짝 비치면서 외로움을 달래기도 합니다. 집안의 경제권도 이미 아내에게 넘어간지 오래고 자식들과의 관계도 무덤덤해져 가족간의 대화도 단절되기 일수입니다. 자녀들에게는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 다운가?”라는 질문에 “글쎄올시다”라는 답변과 함께 자책과 움츠림의 아버지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모두에게 따돌림을 받고 있는 「한국의 아버지」도 세상의 흐름에 따라 변화되지 않으면 안될 것같습니다. 먼저, 가족의 부양 역할을 혼자서 감당해야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 집안의 사소한 일부터 청소․요리등 가족과 함께 더불어 풀어나가겠다는 생각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남자․아버지라는 사슬에 스스로를 묶어, 힘들고 지쳐도 내색하지 않고 무거운 짐을 혼자서 이고 간다면 이보다 더큰 어리석음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저금리․고령화 시대에는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일해야하고 외국에 이민간 사람들처럼 슈퍼마켓․세탁소․식당등 시시한 일에도 메달리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아버지 노릇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지만 2부 ․ 3부 인생을 보다 여유있게 ․ 보람있게 보낼 수 있는 새로운 「아버지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