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출장전 CEO칼럼을 준비하다가 가까운 후배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매월 한번도 빠지지 않고 멀리 부산에서 정성스럽게 소식을 보내주는 「윤형」의 이번 편지는 남쪽에서 날아온 따뜻하고 훈훈한 봄소식이었습니다.

때로는 잘한다고 격려하고, 때로는 무리하지 말라는 충고도, 이따금 잘못을 꾸짖는 경우에는 나스스로 질금거리는 표정을 짓기도 합니다.

보고싶고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는 전화를 들고서 오랫동안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부산 친구들 이야기, 자녀 뒷바라지에 얽힌 이야기 등 정말 구수하고 개운한 이야기를 나누어 왔습니다.

一健, 二妻, 三財, 四事, 五友라 하여 나이들어 가면서 우리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들이라 하지만, 어쩌면 모든 것이 뒤쪽으로 밀려나는 우리나이가 되면, 「五友」보다 「二友」라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릅니다. 정겨운 친구들, 특히 고등학교까지의 친구들을 만나면 재물, 지위, 학식, 재능 모든것이 가식이고 허울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고, 욕도하고 언성을 높이면서 순식간에 옛날로 돌아가게 됩니다.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포장마차나 자갈치 앞마당 같은 곳에 앉게 되면, 더더욱 발가벗은 모습으로 사우나에 앉은 것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바로 이분과의 대화가 그렇습니다.

편지의 주인공은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사업을 아주 성공적으로 하는 자랑스러운 후배입니다. 同期들간에도 신망이 투텁고 항상 희생과 베품의 마음을 갖고 있고, 선후배들과의 친분도 깊게 나누고 있습니다.

부산 東亞高의 1년 후배이지만, 대화를 나눌 때는 선배같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사려깊고 넓은 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매월 보내주는 편지에 단한번의 회신도 못하고 매월 LCC magazine을 보내주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번호에는 이분의 편지 “우리 마음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를 올리면서, 본인의 동의 없었던 점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우리 마음에도 봄이 왔습니다.”

白 星 天 선배님에게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중간에 멈추지 않고 오후가 들어서도 계속해서 내리고 있는데 조용히 내리는 빗방울소리가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아들과 명랑한 목소리로 즐겁게 대화하는 딸이 가까이 있는듯 한 기분이 들게 합니다. 봄은 기나긴 겨울잠에서 힘차게 걸어 나오는 것들의 이야기입니다. 딱딱하게 굳은 땅에서 걸어 나오는 새싹들의 이야기, 딱딱하게 굳어버린 껍질 속에서 터져 나오는 꽃잎들의 이야기, 얼음을 깨고 솟아나오는 시냇물의 이야기, 사람들의 삶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로부터 걸어서 나오기 때문이고 우리들의 마음이 늘 설레는 것도 이렇게 걸어 나오는 이야기가 계속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봄은 이미 도착했습니다.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사람들이 피곤한 일상생활의 언저리를 맴돌 때, 말없이 봄을 기다려온 많은 바램들이 모여서 봄이 도착한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들 마음속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殘雪들을 털고 일어나서 다함께 기뻐해야할 것 같습니다. 이미 봄은 우리 곁에 도착했으니까요.

해마다 봄이 되면 유달리 바람이 많이 부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겨울잠을 자고 있는 나무들을 깨우기 위해서 오후만 되면 바닷가 쪽에서 바람이 불어와 나무들을 흔듭니다. 山에 오르다 보면 하느님의 존재를 느끼기가 쉬운데 특히 시기적으로 요즈음같이 온갖 꽃들이 피어나고 있는 환절기에는 더욱 하느님의 섭리를 느끼게 됩니다. 구불거리는 오솔길을 올라가다 보면 스치는 바람 끝은 아직도 차갑지만 한겨울 꺼멓게 얼어붙었던 나뭇가지들 끝자락이 어느새 꽃을 피우고 새싹들을 틔우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곧 없던 풀들이 새로 돋고 안보이던 꽃들이 온 세상을 채워나가겠지요. 자연은 온 몸에서 인간들을 사랑하는데 인간들은 말로만 자연을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아침 출근길에 KBS 담벼락에 하얀 목련꽃이 활짝 피어나기 시작했던데 예년보다 겨울이 지나치게 춥고 꽃샘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그랬는지 그사이 미처 피어나지 못하였던 온갖 봄꽃들이 한꺼번에 다 솟아나는 것 같습니다. 아침 산책길에 황령산 청소년 수련원에 가보면 하얀 목련과 붉은 동백, 노란 개나리, 분홍빛 진달래에, 화사한 벚꽃들까지 모든 봄꽃들이 한꺼번에 피어나서 저마다의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것을 보면 이제는 봄이 오기는 온 모양입니다. 다소의 시차는 있지만 자연의 봄은 어김없이 찾아오기 마련이지만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인생의 봄은 각자가 만들어야 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星天 선배님!

우리가 살아가면서 참 중요하다 싶어서 버리지 못하고 있던 책이나 서류 公文들도 몇년이 지난 뒤에 다시 펼쳐 보면, 순간순간의 조바심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드는 때가 많은데, 시간이 흘러가는 속에 그냥 지워지고 묻혀버리는 것들로 허다하니, 너무 많은 생각과 계획 심지어는 고민 등으로 머릿속을 채우기 보다는 적어도 꼭 필요한 것들만 제대로 알고 채워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많은 것들을 읽고 생각하고 아는 것만큼, 우리들의 마음이 깊고 맑게 바뀌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깨닫고 이해하여 결심한 내용들을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실천해가면서,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사는 일은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합니다. 물론 마음속의 쓰레기통을 비우고 나서도, 금세 새로운 쓰레기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또 들어차겠지만, 비우는 일없이 채우기만 하는 삶과, 깨끗이 비우고 나서 다시 채워 나가는 삶은 質的으로 차이가 있을 터이니, 이런 저런 생각으로 마음속에 分心이 일어나더라도 매우 힘들기는 하겠지만 앞으로는 너무 안타깝거나 괴롭다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들의 마음을 잘 다스려 나가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물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고민하고 방황하면서 성숙하기도 하고 좌절도 하는 것이 사실이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부러워하는 상태가, 머릿속은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가슴은 따뜻하고 배는 두둑한 상태이기를 원한다는데, 이 힘들고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너무나 진실되고 순수한 것도 좋지만 조금은 더 두둑한 배짱을 가지도록 노력해야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우리들이 겪었던 크고 작은 실수나 실패를 영원한 추락으로 혼동하지 않았으면 싶습니다. 네모난 모양의 네모난 못이 되기보다는 네모난 구멍의 동그란 못이 되라는 말이 있던데 선배님이나 제 나이쯤 되면 세상은 이미 결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들의 삶은 아직도 많은 변화의 여지가 남아 있고, 결심하고 꾸준히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앞서가 있는듯한 경쟁자들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으니 만치, 비록 현재의 상황이 우리들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조급하게 행동하지 않고 항상 여유를 가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보내고 싶고, 인생에서, 행복은 항상 하룻밤 정도 늦게 찾아온다는 여유와 배짱을 가지고 살아나가고 싶습니다. 어두운 밤이라는 것은 하룻밤만 어두웠거나 백년 동안 어두웠거나간에 촛불 하나로 밝혀진다라는 말이 있던데 그사이 우리들의 삶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순간들이 많았고, 앞으로도 또다른 많은 일들과 순간들이 오겠지만 우리들의 마음을 잘다스리고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전혀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도 믿고 싶습니다.

星天 선배님!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각자의 행복했던 순간들이 모두 모여서 바로 오늘을 만든다는 사실은 다를 수가 없겠지요. 바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날마다의 생활 속에서 문득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가슴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일보다는 후회스럽고 안타깝고 아쉬운 일들이 많기 마련이지만,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뛰어 왔는데도 왜 아쉽고 쓸쓸한 일들이 기억이 많이 날까요? 완전한 행복은 아지곧 멀게만 느껴지고 가슴은 허하고 외롭기까지 합니다. 제가 너무 크고 멀리 있는 것만 바라보고 사는 것은 아닐까요? 행복은 과연 먼 곳에 있는 것일까요? 우리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환하게 미소 짓도록 만들어 주는 일상의 재미는 우리들 곁의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일텐데 말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모든 것들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서 무작정 기다려야할 때도 많은 법이고, 어떻게 기다리느냐를 아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나 비결이 될 때가 많던데, 각자가 자기 자신의 人生의 봄날을 회상해 보는 것, 봄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추억해 보는 것은 실로 아름다운 일인 것 같습니다. 무더운 여름날에도, 쓸쓸한 가을날에도 또 추운 겨울날에도 가끔씩은 마음의 봄날이 찾아오기 마련인데 그럴 때에는 우리들 자신이 그것을 알아채고 오늘은 마치 봄날 같은 느낌인데 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봄이 되면 해마다 똑같이 느끼는 바이지만 어떤 일이든지 웬지 술술 잘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스컴마다 꽃이 피어나는 봄소식을 전하고는 있지만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경기불황으로 실제로 이번 봄은 그리 평화롭게 보이지만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의 하루하루가 아무런 탈 없이 잘 굴러가기를 빌고 싶습니다. 지난겨울에는 눈이 그렇게도 많이 내렸지만 하늘에서 장미꽃이 눈이나 비처럼 내리는 일은 없고, 우리가 인생에서 더 많은 장미를 가지고 싶다면 더 많은 장미나무를 심어야 하듯이 남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만 자기가 목표로 삼은 그 곳에 좀더 쉽고 빠르게 갈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星天 선배님!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앞山에서 먼데 있는 뒷山까지 빗물이 말끔히 씻기워지고 참으로 깨끗하고 파란 하늘이 펼쳐지겠지요. 그 때에는 티 한점 없는 하늘을 올려다보면 自我를 꺼내어서 저 하늘의 차고 푸르른 물살에 담구어 흔들어 보고 싶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온 가족의 평안과 화목 행복함을 진심으로 빌겠습니다.

2005. 4. 10

부산에서 윤광철拜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