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발행년도 2017년 11월
제목 창업 20주년을 맞이하여

1997년11월 IMF금융위기를 맞아 영원할 것 같았던 대기업들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려, 재계 2위의 대우 그룹은 공중 분해되었고, 한보 ‧ 기아 ‧ 쌍방울 ‧ 쌍용등 쟁쟁한 기업들도 재계의 지형도에서 사라져버리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가부도 사태 속에서, 겁없이 창업한 우리 LCC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20년의 파고를 뛰어 넘어왔습니다.

 

중소 제조업의 수명이 10년이면 10%, 20년이면 1%만 살아남고, 30년이면 0.1%만 생존할 수 있다는 척박한 대한민국의 기업 환경속에서, 百年企業을 꿈꾼다는 것은 “어리석음과 무모함”으로 비추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20년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서, 국내시장에서 벗어나 품질과 가격 경쟁력의 Global 수출기업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Vision이 실현될 수 있다는 희망과 스스로 뿌듯하고 신바람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97년 9월 어느 가정의 가족회의가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24년간 다니던 LG를 계속 다닐 것인지, 아니면 사표를 던지고 사업을 시작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만약의 경우 「가정 몰락」이라는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는데도 wife는 적극 동의하였고, 두아들 역시 “아버지가 실패할리가 있나요?”라는 믿음(?)으로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잘못될 경우 서울역 노숙자 신세가 될 수 있는데…”라는 말을 던졌지만, 결국 집안의 모든 것을 정리하여 「사업가의 길」로 나서자는 결론을 우리 가족들은 내리게 되었습니다.

     



보직 변경으로 서울로 단신 부임 ‧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48번째 맞는 생일은, Gusko씨와(지금은 독일 BDF의 Director이고 당시는 Nivea seoul 사장이었음) 둘이서 소주와 통닭으로 축하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15년간 동거해오던 BDF - LG는 결별 수순을 맞으면서, Nivea제품을 생산 ‧ 공급해줄 OEM회사를 선정하고 있었고 그에 따른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당시 화장품 제조 수탁업체(OEM ‧ ODM생산)의 수준은, 지금과 달리 품질관리 수준들이 현저히 뒤떨어지고 있어 여러회사들을 방문하였지만 Nivea제품을 생산 ‧ 공급 해주기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예를 든다면 정제수 제조 시설이 「RO type」이 아니고 「Ion Exchange」로 되어 있다는 것등 …….

 
Gusko 사장은 전형적인 독일인이었지만, wife가 한국인이고 처가집 식구들과 오랫동안 함께 생활해와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를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객지에 혼자 떨어져 생일을 맞고 있는 나에게 거나한 소주파티를 열어 주었고, 본인이 겪는 Nivea Business에 있어 어려움도 토로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술이 취하게 되면 호기를 부리게 되는데, “내가 공장 건설을 6년이나 했는데, 화장품 제조 공장은 공정과 설비가 간단해 6개월이면 공장을 짓고 생산을 시작할 수 있다.”라고 큰소리를 치면서 술자리를 끝내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출근하니 Gusko 사장은 「취중진담」이라면서 간밤에 이야기한 화장품 공장을 건설하고 생산 공급해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을 진지하게 물어 왔었습니다. 어쨌든 건설 비용과 일정 그리고 LCC가 갖게될 LG보다의 가격 ‧ Delivery 우위성을 담은 「Feasibility Report」를, 독일 본사에 제출하고 승인을 받아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공장 부지를 매입하고, 건물을 짓고, 설비를 구입하고, 각종 부대시설과 배관을 마무리하여 1998년 7월부터 Nivea 생산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Nivea제품의 특성상 Seasonality(계절성)라는 약점을 가지고 있어, 비수기인 1 ~ 6월동안은 생산 물량이 전무하여 인건비등 고정비 지출의 커다란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LG의 선후배들이 도움을 주어 Hair제품 ‧ 화장품 ‧ 의약외품의 OEM생산을 수주받게 되어 큰 위기를 넘길 수 있었고, 한때는 Nivea제품 매출보다 더많은 Volume이 되어 회사 경영개선에도 커다란 보탬이 되었습니다. 뒤이어 Unilever의 Vaseline ‧ Ponds ‧ Dove등의 국내 ‧ 수출의 OEM 생산을 하게 되었고, 3M ‧ 유한 ‧ 녹십자 ‧ 동국의 제약회사와의 거래를 통해 품질 경쟁력을 갖춘 회사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LG제품의 수주를 위해, 추가 부지를 확보하여 제 2공장을 증설하였고, 곧이어 Lip Care(립밤)생산 증대를 위해 3공장도 건설하였습니다. L/C의 국내 시장은 상아제약이 거의 대부분 공급하고 있었으나, 세계적인 L/C제조업체인 독일 BDF의 제품 출시 ‧ 공급으로 시장은 Global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1999년도 년 30만개 생산에서 100만개, 300만개, 500만개 ~ 이제는 년간 1,000만개 이상 생산되고 일부는 동남아에 수출하고 있는 실정이며 국내 MS도 50%이상을 점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LCC가 고객사인 Nivea의 BDFK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도, Lip Care(립밤)의 품질 ‧ 가격 경쟁력을 통해 매출 ‧ 수익성 개선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대기업과의 많은 거래를 통해 실감했던 것은, 일방적인 단가 인하, 말은 상생을 외치지만 “갑과 을의 수직적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또한 OEM 생산 ‧ 공급만으로는 직원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없고, 급여 ‧ 복리후생 개선도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과 함께 “자사 Brand의 개발”을 서두르게 되었습니다. 매출 ‧ 수익등 모든 부분 종속적인 관계인 대기업 OEM ‧ ODM생산에서는, 우리의 vision인 百年企業의 꿈을 결코 실현할 수 없다는 위기 의식을 느끼면서 무언가 탈출구를 마련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사 Brand를 갖는 일이었습니다.

   

자사 Brand의 제품을 개발 ‧ 시장 진입을 위해서는, 연구실과 포장물 개발 조직이 있어야 하고, 많은 광고비와 마케팅 비용을 부담해야 하며, 유통의 조직과 인력이 필요한데…… 중소기업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고 오직 대기업만이 할 수 있는 분야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대기업과 충돌이 일어나는 Mass Market은 결코 우리 중소기업의 영역이 아니고, 품질 ‧ 가격 경쟁력과 Speed 경영으로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는 Niche Market(틈새시장)만이 우리가 나아갈 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마치 성경에 나오는 다윗(중소기업)과 골리앗(대기업)의 싸움은 약자가 강자를 이긴 기적으로 설명될 수 있지만, 일대일 맞대결은 피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원격전투」의 싸움 방식을 선택한 다윗(중소기업)의 승리처럼 “틈새시장”만이 우리 중소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전쟁터라는 것을……

   



사우나 화장품은 대기업 L사 ‧ T사의 제품이 시장을 압도하고 있었지만, 가격 ‧ 품질 ‧ Delivery이라는 강점을 앞세워 후발기업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여 이제 어엿한 선두주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Daiso 매장에서의 매출 신장도, 우리 LCC가 만들어가고 있는 틈새시장의 성공 사례가 되고 있습니다. 몇가지 제품에 월 수백만원의 매출에 불과하던 ORIOX 제품들이, 이제는 50여종의 제품 다양화와 제품 Renewal로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Mass Market이 아닌 틈새시장의 개척 노력은 “공공 장소에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Dispenser Gargle”개발로 이어졌습니다. 세계 최초의 디스펜스 가글은 초기 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Kit 고장없는 Compact한 현대적 감각의 디스펜스 개발, 소비자 선호의 가글맛, 위생적인 종이컵으로의 변화등으로 이익 창출의 “효자상품” “수출 전략품목”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OEM회사에서 자사 Brand의 화장품회사로의 변신은 기업 경영권의 주도성을 확보할 수 있고, 신제품 개발역량의 확대, 제품 구조의 다양화, 매출 ‧ 수익성 확보등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또한 내수 시장에서 벗어나 수출기업으로의 전환은 OEM ‧ ODM생산, 자사 Brand매출, 수출실적을 3등분하는 획기적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수출은 우리들의 시야를 Global화하고, 건전하고 올바른 기업문화를 정착시키고, 품질경영의 뿌리를 튼튼하게 하고, Speed 경영을 가능케 하고 있습니다. 50억원 이상의 전산투자와 Top의 지속적 관심은 「IT전국대상」과 SMART공장으로 선정되었고, 표준과 전산에 의한 System 경영은 가격 경쟁력에 의한 수익성 확보로 연결되어, 빚없는 무차입 경영이 가능케 되었습니다.

 

전년도 우리들은 1250만불 수출 실적을 올렸습니다. 이제 일본 후생성 의약부외품 제조 ‧ 품목 허가를 획득하여 프로폴린스 가글이 일본 ‧ 동남아에서 “名品 Gargle”로 자리잡게 해야 합니다. 신규 개발하는 자동 (가글) Dispenser로 미국 시장 곳곳을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수출을 통한 百年企業이 우리의 vision이고, 국가 경제에도 기여할 수 있는 길입니다.

     



사원 여러분, 그리고 핵심적인 역할을 해주고 있는 간부사원 여러분!!

 

10년을 넘어 “창업20주년”을 맞게된 것도 모두 여러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제 30년을 넘어 백년기업으로 나아가는데 여러분들의 열정과 도전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고, 우리들의 모든 역량이 Global 수출기업으로 집중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표이사 白 星 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