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아침 일어나 베란다에 나가보니, 빨갛고 하얀 연산홍이 꽃봉우리를 펴면서 나를 반겨줍니다. 공장아파트 , 서울집 모두 봄을 알리는 꽃들이 활짝 피고, 야생화마저 꽃기운을 알려줍니다.

겨울철 기나긴 계절에 얼어붙었던 대지가 풀리면, 따뜻한 봄을 알리는 꽃소식이 풍년화⁃산수유 그리고 매화 순으로 차례로 올라오고, 3월 중순에는 개나리⁃진달래, 4월에는 벚꽃이 봄소식을 전해옵니다.

계절의 첫번째인 「봄」이라는 단어는 “불의 옛말인 「블(火)」과 오다의 명사형 「옴(來)」이 합쳐지면서 「ㄹ」받침이 떨어져 나간것”에서 유래되어 따뜻함을 나타내고 있고, 영어단어의 「spring」역시 「뛰어오름」과 「온천⁃샘」을 뜻하고 있으니 새로운 도약과 희망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2월 16일, 한국 교회의 「큰어른」으로 격변의 역사 한가운데에서 민주와 정의의 가치를 지켜온 수호자 김수환 추기경님이 선종하셨습니다. 평생을 가난하고 힘없는 약자의 편에 섰고, 1970⁃80년대 서울 명동 성당이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이 되게 하셨습니다.

6월 민주항쟁시위대가 명동성당으로 피신해 들어 왔을 때도 “나와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라”며 경찰의 성당진입을 막아, 민주화 운동이 성공하는데 큰 힘을 보태기도 하였습니다.

1951년 사제서품을 받으시고 1969년 47세때 한국의 첫 추기경이 되셨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 재임한 추기경이었다」고 AFP통신은 전하고 있습니다.

한국 카톨릭의 지도자였지만, 신자가 아닌 사람들사이에서도 정신적 지도자로 광범위한 존경을 받았고, 이 사회를 밝히는 「빛과 등대」의 존재로 서 있었습니다.

추기경님의 선종과 추모의 마음은 너무나 「큰울림」으로 다가왔고 우리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사흘동안 유해가 안치된 명동성당을 찾은 40만의 조문객 행렬은 길고 뜨거웠고, 영하의 찬바람 속에 3~4시간이 소요되는 조문에 무질서와 소란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들의 얼굴에는 추위와 짜증이 아니라 사랑과 행복 그리고 희망을 엿볼수 있었고, 오히려 나이든 노인들에게 양보하는 아름다운 모습들도 발견될 정도였습니다.

누구는 2km이상 이어진 조문행렬을 두고 “인간의 길에서 신의 길을 보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추모 인파속에서는 승복을 입은 승려와 개신교 목사의 모습도 보였고, 여야 정치인의 구분도 없었고, 그를 괴롭혔던 과거 권력자도 찾아와 머리를 숙이기도 하였습니다. 가진자와 못가진자, 나이든 노인과 젊은이, 진보와 보수, 동서남북 각지에서, 정치와 이념으로 갈라진 그들이 모두 함께 하였습니다.

살아서 국민의 존경을 받던 그분은 죽어서도 온국민을 하나로 만드는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축구경기 이후로 국민 모두를 이렇게 한마음으로 결집시킨 적이 없었습니다.

정파⁃이념⁃지역⁃종교⁃빈부로 나뉘어 분열과 대립, 갈등으로 뒤범벅이 되어있는 우리사회에도 통합과 사랑에 대한 갈구가 잠재해있다는 “꿈과 희망”을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금융위기와 소비위축⁃수출둔화에 따른 가동율 급락과 실업증가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데도, 정치권의 대립과 마찰 그리고 보수⁃진보의 갈등으로 한발짝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경종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법안처리를 놓고 무력충돌 후 국민들의 많은 비난과 질타를 받고 있음에도, 법안처리 비율이 단 2%에 그치고 있는 국회의 무능에도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추기경의 아호 「옹기」는 부친이 산속에서 옹기를 만들어 팔면서 신앙을 이어간 것에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옹기는 좋은 것과 나쁜 것 심지어 오물까지 담는 질박한 용기이듯이, 가난한 사람⁃장애인⁃병약자 그리고 수감자등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파한 그분의 깊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김추기경은 종교간 화해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쏟아, 불교「길상사」개원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법정스님을 명동성당으로 불러 설법을 하도록 주선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날 자신의 교리만 절대진리라 생각하여 타종교를 배척하고 매도하는 편협한 일부 종교인들이 본받아야할 자세인 것입니다.

월주스님 역시 “종교계는 이제 더는 반목하지 말고 불교는 자비, 기독교는 사랑, 천도교는 포덕등 각종교 본연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야한다”는 말로 종교계가 합심하여 추기경의 빈자리를 메워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빈소에는 화환 하나 없었고(이명박대통령 화환도 돌려 보냈음), 당연히 조의금도 받지 않았습니다. 간소한 장례를 강조한 고인의 뜻에 따라 「나무묵주」하나만 손에 끼운채로 1-평 남짓한 성직자 묘역에 안장되었습니다.

추기경님은 많은 것을 남기고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각막기증으로 두사람의 시각 장애인이 빛을 얻었고, 사제양성을 위한 「옹기 장학회」가 설립 운영되어 있고, 에이즈 어린이 환자를 돕는 「김수환 장학재단」이 설립되고 기념관 건립과 각종 추모사업이 전개될 예정입니다.

추기경님이 마지막으로 남긴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의 유지를 이어받아, 「감사⁃사랑」운동을 천주교 서울 대교구 중심으로 펼쳐나간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습니다.

山에 오르다보면 하느님의 존재를 느낄 수 있고, 특히 요즈음같은 봄날에 여기 저기 온갖 꽃들이 봉우리를 터트릴 때면 당신의 섭리를 접하게 됩니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은 차가운데 누렇게 말라버린 앙상한 나뭇가지들 끝자락에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자연의 오묘함은 우리에게 “희망”을 선물하는 것 같습니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는 헤엄을 치고/ 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 꽃망울을 튼다/ 인생항로 파도는 높고/ 폭풍우 몰아쳐 배는 흔들려도/ 한고비 지나면/ 구름뒤 태양은 다시 뜨고/ 고요한 뱃길 순항의 내일이 꼭 찾아온다”라는 문병란 시인의 「희망가」는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는 우리들에게 「희망의 내일」이 있다는 위안을 주는 것 같습니다.

1980년 군부 독재 시절, “꽃샘추위가 올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반드시 해야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면 결국 민주주의가 찾아올 것입니다”라는 추기경님의 말씀은 서울의 봄이 짧고 매서운 꽃샘추위가 왔지만 결국 「민주주의의 봄꽃」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추기경님의 선종은 “밝고 아름다운 봄꽃”으로 승화되시고,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쳐 어렵고 힘든 세월을 보내고 있는 우리 국민들에게 반드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보내고 있습니다.

대표이사 白 星 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