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을 하고있는 고향 선배가 한분 계십니다.

가족들은 부산에 살고 있고 혼자서 서울로 올라와 화원을 운영하신게 30년이 되신 것 같습니다. 혼자 사시니 불편한 것도 많고 가족이 없어 외롭기도 할텐데 좀처럼 집에 내려가시지 않고, 심지어 명절에도 다녀오시지 않는 것같아 이상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가족 보고 싶지 않느냐?” 는 질문에, “나는 돈만 벌어 보내주면 되는데....”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어느날 꽃을 사러 갔다가 황급히 나가는 어느 부인이 있었는데, 부산서 올라온 사모님인데 내려갈려고 서울역으로 출발했다는 종업원의 설명이었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생활비가 부족하여 돈얻으러 왔다가 볼일(?)만 보고 내려가셨다는 것입니다. 짐작컨대 선배께서는 자그마한 방한칸(고시원?) 얻어 혼자 자취하고 술도 드시지 않으니 본인 앞으로 드는 생활비는 정말 적은 돈일테고, 열심히 번돈은 모두 가족앞으로 보낸다는 것입니다. 아내로 부터는 부부사랑도 받지 못하고, 자식들로부터 존경과 함께 60이 넘어까지 힘들게 일하여도 아버지 대우도 받지못하는 것같아, 무척 안타까운 생각이 들곤 하였습니다. 평생 가족을 위하여 일하고 돈벌어야하니, 이분은 「돈벌이 기계」가 아닌가하는 착각마저 듭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는 표의문자라, 글자마다 깊은 뜻이 숨어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 男이라는 단어는 손바닥을 칠정도로 꼭 들어맞아, 田(밭)에서 일(力)하는 것이 남자라는 것입니다.

얼마전 택시를 탔더니, 나이가 75세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정말 고생이 많다는 위로의 말에 “나는 약과이지요. 80나이에 개인택시를 운전하는 기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중에 노후에 편하게 살려고 택시를 그만둔 사람들이 있는데 벌써 죽거나 건강이 나빠진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아마 죽을 때까지 운전대를 놓지 않을 생각이지요. 그리고 적은 돈이라도 집에 갖다줘야 남편대접을 받지요”라는 긴대답을 하고 있었습니다.

매우 성실하고 부지런하신 것 같아 많은 덕담을 나누기도 하였고, 나이 80까지 일할 수 있는 처지가 부럽기도 하였지만 평생·죽을 때까지 가족의 경제적 부담을 지고 살아야하는 남자들의 처지가 불쌍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공장 근처 광혜원에 골프 연습장이 하나 있는데, 약 4000평에 넓고·길고 깨끗하여 도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멋진 드라이빙 레인지입니다. 20년전 서울에서 법무사 생활을 하시다 고향으로 돌아와 골프 연습장을 만들었는데, 언제나 청소하고·나무심고·잔듸깎고·각종장비 수리하고, 너무나 부지런하신 사장님이십니다. 사모님께 “사장님이 저렇게 부지런하시니 참 편하시겠습니다”라는 말씀을 드렸고, “좋지요. 너무 부지런하셔서 어떤 때는 피곤하지요”라는 대답이었습니다. 남편이 일찍 죽어 시골에서 혼자 사시는 어느 부인에게 “재혼하셔야지요. 그래야 오붓하고 행복한 노후를 즐길 수 있지요.”라는 이야기에, “남편은 필요없고 부지런한 머슴하나 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아직도 현직에 있으면서 열심히 일하고있는 친구들은 얼굴에 생기가 돌고,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기죽지않고 자기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집안에서도 남편과 아버지의 권위를 잃지않고 대우(?)받는 가장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 50~60에 은퇴할 시기가 오면 「분리수거 쓰레기」로 전락하거나 「물에 젖은 낙엽」으로 취급받게 됩니다.

「오락기구(?)」가 문을 닫고, 매일 나가야할 일터도 없어지고 집에다 돈도 갖다줄 처지가 되지 못하면 가족들로부터 천덕거리가 되어 말과 행동으로 구박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늘 바깥일을 보던 남편이 이제 집안에만 있고(방콕대학), 함께 보내는 생활에도 적응해야하고, 계속적으로 뒤치닥거리를 해야하기 때문에 아내가 받는 STRESS도 참을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하게되고, 이러한 정신적 질환을 「은퇴남편 증후군」(Retired Husband Syndrom)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아내들은 지금까지 남편이 출근한 후 집이라는 “아내의 성城”에서 자유롭게 지내왔는데, 정년퇴직한 남편이 집안에서 버티고 있으면 그동안 누려왔던 편안함이 깨어지고 막연한 불안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남편이 집에 있다는 생각만 하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아나고, 숨이 콱 막히고, 심한 복통·두통을 겪게된다고 실토하게 됩니다. 그래서 은퇴한 남편을, 아직도 일할 수 있는 나이라는 이유로 다시 일터로 내모는 매몰찬 아내들도 볼 수 있는데, 암수술로 몸이 허약한 어느 선배의 경우에도 주위사람들로부터 곱지않은 시선을 받고 있습니다.

얼마전 대기업에서 고위직임원으로 지방에 근무해왔던 은퇴친구의 아내를 만나, “10년이상 떨어져있던 남편이 돌아왔으니, 편안하고 신혼재미를 느끼겠군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녀의 대답은 “말도 마세요. 아주 호된 시집살이 하고 있습니다. 힘들어 죽겠어요”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최근 은퇴한 남편들을 일컬어 “식(食)시리즈”로 비하·비유한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남편들이 집에서 밥을 먹는 끼니수를 따져서 “일식” “두식” “삼식”이라 하고 바깥일로 집에서 식사를 거의 하지 않는 것을 “無식”이라 부르고 있는데, 은근히 비하하는 단어로 변질되고 있다고 합니다. 한끼도 안먹는 남편은 무식님 또는 영식님(존경의 뜻), 한끼먹는 사람은 일식씨(존대), 두끼는 두식이, 세끼먹는 남편은 “삼새끼”(비하)라는 은어로 불리고 있다고 하니.....

결혼 후 평생 가족을 위해 봉사한 남편이, 늙고 힘떨어져 집으로 돌아오니 먹는 끼니수를 빗대어 이렇게 부른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입니다. 남녀평등시대를 지나 여성상위시대에 살고 있는 요즈음, 웃어넘기라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으나, 은퇴한 남편을 퇴물로 받아들이는 그들이 어떻게 20~30년 남은 여생을 부부가 함께 동고동락할 수 있을까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앞섭니다.

2007년 한국 남자의 평균수명은 75세, 여자의 82세에 비해 7년이나 뒤떨어지지만 10~20년내에 80세로 진입할 것은 분명합니다. 은퇴후에도 20~30년을 더 살아가야한다면 즐겁고 행복하고 멋진 노후를 가져야하고 “당신! 혼자서도 재미있게 살 수 있어?”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이들은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1.딸, 2.돈, 3.건강, 4.친구, 5.찜질방이라하고 남자는 1.마누라, 2.아내, 3.얘들엄마, 4.집사람, 5.와이프라하여, 여자들의 List에는 남자가 빠져있지만 은퇴한 남편들이 꼭 필요로하는 것은 모두 “아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서글픈 남편들의 자화상에서 탈피하지 않으면 “분리수거 쓰레기”신세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아내를 잃은 남자보다 남편을 잃은 여자는 훨씬 더 많은 것은 평균수명의 차이와 남녀 결혼나이차이 때문이기도 합니다.

혼자된 여자들의 대다수는 슬픔에 빠져있다기보다 하루하루를 생기있게 보내고, 노래방에 가서 유쾌하게 놀고 있고, 취미나 여행클럽에서도 활동적이고 각종 문화강좌에서도 더욱 적극적으로 배우고 있어 하늘나라로 먼저간 남편들로서는 기분이 나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연령별의 「얄미운 여자 시리즈」에 “60대;남편이 돈 많이 벌어놓고 일찍 죽어준 여자”인걸 보면 남자와 달리 여자들은 돈만있으면 나이들어 혼자사는 것이 대단히 큰 행복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내를 떠나보낸 남자들의 모습은 순식간에 늙은이 모습을 띄거나, 옷차림이나 외모가 너저분해지고, 살아갈 희망을 잃고 무기력해져, 건강과는 동떨어진 상태로 인생의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원시시대에는 가족을 위하여 위험한 사냥을 나서야 했고 농경시대에는 들판에서 소처럼 땀을 흘려야했고, 산업시대에는 자신의 청춘을 불사르는 산업전사가 되어야 했던 남자들은 이제 가정으로 돌아왔습니다. 은퇴후 다녀야한다는 하바드대학, 하와이대학, 동경대학, 방콕대학의 재학생이 되어 가족이나 주위로부터 조롱의 신세가 되어서는 아니됩니다. 등산·단전호흡등 운동하는 즐거움을 가져야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의 신세를 면할 수 있고, 남편이 쓰러져 수족을 못가누는 날이 오지 않을까하는 것이 아내들의 노후에 대한 첫번째 불안이라 하니 이러한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주어야합니다. 가급적 복잡함에서 벗어난 단순한 마음가짐을 갖고 주위를 깨끗하고 청결하게 하는 생활습관을 유지하여야 합니다. 이왕이면 옷차림도 말쑥하고 거울을 자주 보며 구닥다리의 모습을 하여서는 아니됩니다.  적어도 와이프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하와이 대학생」은 되지 말아야하고, 친구들 또는 혼자서라도 이삼일의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여유롭고 멋들어진 나그네길을 걸을 수 있어야 합니다. 궁상맞지않게, 여자들의 잔소리에서 벗어나, 자식들에 대한 A/S를 떨치고 당당하고 멋진, 언제라도 혼자 살아갈 수 있는 마음가짐과 훈련을 계속해야 합니다. 평생을 일벌레처럼, 밭에서 일만하는 田+力=男의 굴레에서 벗어나 남은 노후를 즐겁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대표이사 白 星 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