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을 마치고 대학복학을 위하여 미국으로 떠나는 둘째를 전송하기 위하여 서둘러 회사를 출발하였다. 오후늦게 내리던 싸락눈이 함박눈으로 바뀌어 산과 들이 온통 하얀색으로 변하고 자동차 속도도 엉금엉금 걸음마로 변하였다.

대학원까지 공부하러 떠나는 지훈에게는 앞날을 축복하는 하느님의 선물이 하늘에서 내린다 싶어 기분이 더욱 상쾌해졌다.

집에 도착하니, 아내의 “여자친구가 전송한다고 하니 우린 나갈 필요가 없겠네요”라는 말이 아들과의 소중한 「전송시간」을 강탈당한 것 같아, “그래도 나갑시다”라는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3년전 큰놈이 유학을 갈 때도, 공항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오랫동안 그리운 사람처럼 가슴속 깊이 간직할 수 있었는데......

아들들도 가고, 아내도 따라가고 집안이 온통 비어있는 것 같다. 「훌륭한 아들은 국가에 바치고, 돈잘버는 사돈집 자식이 되고, 무일푼의 백수 아들이 진짜 내 자식이다」는 말처럼, 집에서 빈둥되는 실업자 아들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싶다. 딸 둘이면 금․은메달이지만 아들 둘은「목메달」이라는 농담이 실감나는 것은, 장성한 아들들은 밖으로만 도니 부자지간의 情을 느낄 틈이 없고 이제는 두아들 모두 미국에 빼앗겼다는 억울한 마음까지 든다.』

「기러기 아빠」의 자살사건이나 「기러기 가족」의 심각한 현실이 자주 언론에 보도되곤 합니다. 몇년전만해도 「기러기 아빠」는 연예인․변호사․의사등의 전문직 고소득자나 경제적 여유가 많은 상류층의 한정된 이야기였지만, 지금은 교육열이 높은 중산층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보편적 현상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얼마전 아내와 두자녀를 미국으로 보내고 혼자지내던 벤처사업가 신모씨가 가족에게 미안하다고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매스컴에 보도되어, 기러기 아빠의 심각성을 우리 사회가 다시금 확인케 되었습니다. 자녀와 아내를 뉴질랜드로 보내고 몇년동안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고 있는 K대 김모 교수의 넋두리는 실감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한달 월급을 모두 아내에게 보내니 경제적 어려움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지요. 혼자 사는 외로움 때문에 탈선의 유혹도 많이 받고 있고,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떨어져 사니 자식과의 거리감이 생길 수 밖에 없고 아내 역시 남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건강을 위해 꼬박꼬박 식사를 챙겨먹으려 노력하지만, 막상 밥상에 앉아 혼자 먹는 처량함 때문에 밥이 넘어가지 않지요. 규칙적인 운동이나 등산도 혼자 있는 게으름 때문에 거르기 일수였어, 위장병이 생기고 하루하루의 컨디션은 엉망이 되지요.”

「기러기 아빠」에 이어 「기러기 할아버지」도 사회문제로 확산되고 있는데, 딸의 출산과 맞벌이 부부로 인하여 할머니가 오랫동안 손자․손녀 돌보느라 외국에 나가 있는 경우가 많이 발생되고 있습니다. 자녀교육․결혼․손주 뒷바라지등 평생 AS(애프트 서비스)해야하는 우리들의 고정관념과 사회현상이 노후에까지 생이별하여 할아버지 혼자서 쓸쓸히 생활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경제활동에서 은퇴한 할아버지들은 노년기의 각종 질환과 가족으로부터 소외되었다는 역할 상실감, 빈둥지에서 혼자 생활하는 정서적 외로움으로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가까운 친구들중 한사람도 아내가 쌍둥이 외손녀의 뒷바자리로 1년 가까이 미국에 가 있어, 정신적․육체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도 어려운데 쌍둥이니, 집사람이 도와 주어야 된다는 딸사랑을 강조하고 있었지만, 내심으로는 기러기 할아버지 신세를 만든 사위가 원망스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내의 뒷바라지 없이, 가족과의 공감대 없이 혼자 살아가야된다는 것은 경제적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무척 고통스러운 것은 틀림없습니다. 가족이 없다하더라도 일정부분의 집안 일거리는 있을 수 밖에 없고, 이를 직접 챙겨야하고 의식주 문제도 스스로 해결해나간다는 것이 평생 바깥일만 하고 살아온 남자들에게는 낯설고 힘든 일일 수 밖에 없습니다. 회사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올 때의 깜깜하고 썰렁한 집안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고 혼자서 하는 식사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 고등학교때부터 십수년을 하숙․자취로 혼자 살아왔고, 빨래․청소 그리고 집안일에 익숙해 있는 터라, 2년동안의 연습(?) 끝에 무척 잘 적응하고 있어 스스로 감탄(?)하기도 합니다. 어차피 사람의 일평생이 혼자 왔다가 혼자 돌아가는 것이니 가족과 친지들에게 의지하기보다는 스스로 살아가는 독립적 마음가짐이 훨씬 더 나을 수 있다는 생각도 갖습니다. 아내의 도움없이는 밥한끼 해결못하고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이 처리될 수 없다면, 부자지간의 情에 너무 매달린다면, 나이들어 구차스럽고 처량하고 우울한 신세로 전락할 것 같은 착각도 일어납니다. 허기야 5-60대 남자에게 필요한 네가지는 아내․집사람․처․마누라라고 하여 절대적으로 원하고 있지만, 50대 여자들에게 필요한 네가지는, 건강․돈․딸․친구라하여 남편이 들어설 곳은 전연 보이지 않고 있어 어쩌면 우리나이의 남자들은 「오찌누레바」신세인지도 모릅니다. 오찌누레바란 비에 젖은 낙엽이라는 뜻이며, 바닥에 붙어있어 빗자루로 쓸기 어렵다하여 일본에서 퇴직후의 50대 남편들을 빗대어하는 속어입니다.

법정스님은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 밖에 없다. 이세상에 올 때도 홀로 왔고 살만큼 살다가 떠날 때도 홀로 간다. 누구와 함께 있을 때는 부분적인 자기이고, 홀로 있을 때만이 전체적인 자기이다. 부분적인 자기가 아니라 전체적인 자기일 때 진흙에 더럽히지않는 연꽃처럼 생기와 탄력과 삶의 건강함이 배여나온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혼자 사는 즐거움은 누가 밖에서 갖다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변에서 스스로 발견하고 만들어내는 노력이 뒤따라야하고, 일상적이고 사소한 일에서 기쁨과 고마움을 찾아내는 긍정적 가치관을 가져야합니다.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으려면 무엇보다 자기관리가 철처해야하고, 일이 생기고 눈에 띌 때마다 미루지말고 해치우는 부지런함이 있어야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이후 갖게된 단전수련이 몸도 마음도 편안하게 해주고, 있따금 깊은 명상의 시간도 가질 수 있어 정신적 위안에 커다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마라톤으로 보면 반환점을 벌써 돌았고 운동 경기에 있어서도 후반전을 뛰고 있는 요즈음은, 홀로 앉아 가슴속으로부터 들리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나는 누구이고,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고, 인생을 마감할 때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를 조용히 물어봅니다. 남편․아버지․친구․회사대표로써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야하고, 그들에게 해야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봅니다. 봄바람에 날라드는 꽃향기에도, 창문을 스쳐가는 바람소리에도 잠못이루기도 합니다. 아마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지 않으니 잠들지 말고 깨어있으라는 뜻인가 싶어, 지나온 날들을 반성하기도하고 남은 여생을 어떻게 마무할 것인지도 생각해봅니다. 우리가족들이 이곳 저곳 흩어져 살고 있지만, 제각끔 홀로 있을 때 전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여름 방학이 되어 온 가족이 함께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며 즐겁고 편안한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대표이사 白 星 天